나중에 램 더 늘어나면 해봐야겠다
나도 오선생님한테 이 부분에서 배우는 게 많다. 연세가 벌써 70이신데 `배운다`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저 에너지는 가끔씩 나조차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이다.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건 이전에 읽었던건데 포스팅을 했었는지 안했는지 몰라서 그냥 붙여넣음
꼭 영어에 국한된거라기보다는 언어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영어와같이 노래하는 듯한 언어를 배우는데에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듯.
하라고 할 애들은 아니지만 어쨌든 뭐를 까야하는건지는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걸 계기로 국내에서 `제대로 된` 과학기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포스팅도 이미 했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 보고 싶다면 이 글을 참조할것.
이론이지만 어쨌든 뜨긴 떴다. Zeilinger선생이 어떤 얘기를 할지 기대중. URL은
http://tqc2010.leeds.ac.uk/이것도 나랑은 그다지 상관없지만 어쨌든 기록은 해 둔다. URL은
http://www.qip2010.ethz.ch/처음으로 공개될 대중적인 양자컴퓨터NIST에서 또 사고친 모양이다...
뭐 이런 느낌이다...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제목에 오타가 나 있다... PDF로도 볼수 있다.
http://sts.ntis.go.kr/notice.jsp영어논문쓰기에 관한 논문... 시간내서 한번 읽어보기는 해야겠다. 아직 The Elements of Style조차 손도 못대고 있는 형편인데...
DOI는 이곳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_ob=ArticleURL&_udi=B6VDM-4X7FRM9-1&_user=10&_rdoc=1&_fmt=&_orig=search&_sort=d&_docanchor=&view=c&_acct=C000050221&_version=1&_urlVersion=0&_userid=10&md5=3cf581a219e67f4e45c945cf07e3ee33상당히 흥미로운 주제. 내용도 알차니 까지말것.
지식인과 지성인에 대한 주옥같은 설명을 주신 인터뷰. 원문을 첨부하니 읽어보도록 하자.
출처는 http://www.imbc.com/broad/radio/fm/look/interview/index.html
12/5(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 -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작성자 : 시선집중[mbcfocus] 작성일 : 2009.12.06 01:41 조회:166 번호:3080
☎ 손석희 / 진행 :
지난달이었던가요. 한 출판계에 눈길을 끄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치, 사회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전환시대의 논리>가 올랐던 건데요. 물론 아주 잠시 머물긴 했습니다만 눈에 띄는 그런 일이었음엔 틀림없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1974년에 출간돼서 1980년대 필독서였던 <전환시대의 논리>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는 사실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내 책이 더 이상 읽힐 필요가 없어서 인쇄가 0원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을 들 피력해주셨던 <전환시대의 논리>의 리영희 선생님, 오늘 어렵게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근황은 어떠신지 오늘 ‘토요일에 만난 사람’ 시대의 양심,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늘 많은 분들의 좌표가 돼 오고 계신 리영희 선생님을 모시고 얘기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선생님.
☎ 리영희 선생 :
네, 안녕하십니까?
☎ 손석희 / 진행 :
우선은 건강이 어떠신지 여쭤볼 수밖에 없네요. 어떠신지요. 괜찮으십니까?
☎ 리영희 선생 :
뭐 건강은 벌써 한 10년 전에 뇌출혈, 뭐 우리말로 중풍이 돼서 쓰러진 후에 기동을 잘 못하고 또 요새는 겨울이면 만성기관지염이 재발해서 고생하고 있죠.
☎ 손석희 / 진행 :
평소 내 책이 더 이상 읽힐 필요가 없어서 인쇄가 좀 0원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인쇄가 한 푼도 안 들어오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 리영희 선생 :
그렇습니다. 난 그러한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한 까닭은 다소간 내 저서와 책들이나 써온 내용들이 시대를 조금씩 앞서갔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서 깨우치고 그래서 더 이상 내 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도로 전반적으로 그런 의식의 수준이 올라왔으면 그럼 뭐 책 읽을 필요 없으니까 그런 걸 바랐는데 계속 책이 팔리는 거예요. 그래서 인쇄가 조금씩 또 들어오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 손석희 / 진행 :
여전히 아무튼 책은 팔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얼마 전에는 잠깐이긴 했습니다만 베스트셀러 1위에 잠시 오르기도 하는 그런 상황도 됐는데 왜 글쎄요, 요즘에 <전환시대의 논리>가 왜 통할 수밖에 없느냐, 그 책이 또한 필요가 시대가 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시는지요?
☎ 리영희 선생 :
글쎄, 그런 세월이 안 되길 바랐는데 그걸 보고 전진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역시 또 후퇴하니까 그 책에 대해서 그런 의견들이 생겨나는가 봐요.
☎ 손석희 / 진행 :
예, 1950년대 중엽부터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언론인으로서 또 학자로서 또 사회비평가로서 국제문제전문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오신바가 있습니다. 당시의 삶을 지성인에 해당하는 삶의 구간, 이렇게 칭하셨던데요. 혹시 지성인이라는 단어를 쓰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보통은 지식인이라는 단어도 쓰곤 하는데 혹시 차별을 두고 말씀하신 건지요?
☎ 리영희 선생 :
뭐 그런 의미로 차별을 뒀죠. 그 지식인이라는 것은 흔히 요새는 기술적인 지식인, 또는 전업적인 지식인들이 많은 사회이다 보니까 사회공동체 우리 자기의 사회 전체에 대한 관심은 없이 오로지 그 고도의 기술 직업적 지식으로 사는 이 사람들을 지성인이라고 할 순 없단 말이에요. 지성인이라는 것은 역시 전체 개별적으로 살면서 또한 동시에 전체에 이론으로써 전체 생존과 복지와 운명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런 삶이야말로 지성인이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죠.
☎ 손석희 / 진행 :
그것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진보진영, 아니면 보수진영, 그것을 막론하고 말씀하신,
☎ 리영희 선생 :
난 뭐 진보진영이나 보수진영이나 그런 말,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살아가는 방법, 패턴, 이런 것으로써 난 자기 자신을 어떻게 규정을 해서 무슨 주의, 이런 식의 표현을 싫어하기 때문에 물론 굳이 그렇다면 진보나 보수나 다 초월하고서 그래야죠.
☎ 손석희 / 진행 :
오래 된 책이긴 합니다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을 쓰신 바가 있으십니다. 그래서 그때는 좌우로 또 이렇게 나눠서 말씀하셨는데
☎ 리영희 선생 :
우리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정치 철학이나 이런 데서 좌우 흔히 쓰니까 그런 의미에서 쓴 거죠.
☎ 손석희 / 진행 :
그러면 한국사회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있다고 판단하고 계신지요. 혹시?
☎ 리영희 선생 :
뭐, 지금이야 전혀 아니죠. 전혀 아니죠. 이게 어떻게 될 거냐가 걱정스러울 만큼 오른 쪽에, 즉 우익의 날개만이 커가고 함께 더불어 기능을 발휘해야 할 좌측의 날개는 왜소해지고 이른바 위축되고 그런 상황이라고 지금 봐야죠.
☎ 손석희 / 진행 :
그런 속에서도 여전히 이른바 진보진영 쪽, 그러니까 왼쪽의 날개라고 표현하실 수 있는 그 진영은 늘 그런 비판을 받아왔습니다만 늘 분열한다 라는 얘기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리영희 선생 :
본래 세계 정치사를 보면 우익이라는 세력은 이해관계, 말하자면 먹을 걸 가지고 더 먹고 덜 먹고 하는 그것으로 분열해요. 소위 좌익이라는 세력은 먹을 걸 가지고서 싸우다가 분열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이념, 이론의 세분화를 극단까지 몰고 가는 그런 나쁜 성향이 있어가지고 분열하고 자멸하는 그런 두 가지의 별도 대립하는 양상이거든요. 오히려 우익이라는 것이 가지는 그 폭력성이 있지만 그들이 하나가 되려는 모범을 좀 좌측이 채택하고 우측은 또 먹을 것을 쟁탈하는 데에서 생기는 그런 것을 이론적인 좌측의 행태에서 조금 배우고 이렇게 하면 쌍방이 다 이로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 손석희 / 진행 :
지금 말씀하신 것은 큰 틀에서 말씀하신 건데요. 그게 작은 틀로 옮겨가려면 우리 현실 정치에 적용시켜서 말씀해주셔야 되는데 그 질문까진 제가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리영희 선생 :
네.
☎ 손석희 / 진행 :
70년대 대개 대학을 다닌 세대들한테 물어보면 선생님 사상에 특히 매료된 학생들 같은 경우에 ‘의식화의 은인’이라고 부르기도 했고요. 반대편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의식화의 원흉’이다, 이렇게 또 부르기도 했습니다.
☎ 리영희 선생 :
그렇죠. 그건 오랜 세월 그래왔으니까 조금도 나 듣기에 거북스러운 거 없어요.
☎ 손석희 / 진행 :
그래서 7, 80년대에 굉장히 많은 젊은이들이 사실은 또 선생님께 영향을 받아서 민주화운동도 했고 또 감옥에도 다녀왔습니다.
☎ 리영희 선생 :
그랬죠.
☎ 손석희 / 진행 :
어떤 부채의식 같은 것은 혹시 없으십니까?
☎ 리영희 선생 :
있죠. 부채의식이 있죠. 난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을 만날 때 늘 많은 것을 내가 죄를 지었구나 그런 생각을 해서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굉장히 마음속으로 참 반성을 하는 거죠. 그러나 죄의식이라는 표현까지는 아니고 시대의 한 사회에서 한 시대가 변화를 요구할 때 일어나는 일반적 현상이에요. 그래서 나도 역시 그 속에서 시대가 운명적으로 요구하는 그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인 거고 또 내 저서나 발언이나 사상에 공감해서 그런 어려움을 겪었던 젊은이들로 그 시대에 산 사람으로서 시민으로서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의 길이라고 봐요.
☎ 손석희 / 진행 :
아마 앞장서서 가셨기 때문에 당시 그 젊은이들도 선생님께서 부채의식을 가지시라고 요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만 고향이 북한이십니다. 평안북도 삭주군 대관이 고향이신데요. 누님이라든가 가족 만나시고 오신 게 제가 자료 보니까 98년에 다녀오셨고요.
☎ 리영희 선생 :
98년, 그렇죠.
☎ 손석희 / 진행 :
그러면 고향에는 혹시 지금 누님이 아직,
☎ 리영희 선생 :
아니, 가서 조카를 그쪽 당국자들이 어렵게 묻혀있는 무명의 농사꾼 조카를 찾아내 가지고 평양까지 데리고 와서 만났죠. 누님은 벌써 가셨고.
☎ 손석희 / 진행 :
그때 가셨을 때 누님 가족을 만나셨군요. 그럼. 누님을 만나신 건 아니었고요. 리영희 선생님 댁에서 인터뷰 하고 있기 때문에 뻐꾸기시계가, 정감 있네요. 이 소리가. 밤에도 혹시 이렇게 울리면 혹시 주무시는데 지장이 없으실까 모르겠네요.
☎ 리영희 선생 :
저 뻐꾸기가 아주 현명해서 해만 떨어지고 어두워지면 안 울어.
☎ 손석희 / 진행 :
(웃음)
☎ 리영희 선생 :
잘 만들었어요.
☎ 손석희 / 진행 :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 리영희 선생 :
어두우면 안 울어. (웃음)
☎ 손석희 / 진행 :
아무튼 요즘 남북관계도 조금 잘 안 풀리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고요. 특히나 남북관계에서 우리 한국정부가 취해야할 어떤 방향성, 이런 것은 어떻게 봐야 될까요?
☎ 리영희 선생 :
미국은 이번에 보즈워스인가, 아마도 태도의 변화는 있을 거예요. 변화하는 태도의 변화... 지금 미국이 북한이 그동안 요구했던 평화협정체결, 정치회담 개최, 이런 요구에 대해서 50년 동안 거부해오던 것에 상당히 접근하려는 그런 표시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오히려 경직되고 북에 대한 우월감으로 잘못 한반도 상황을 오판하고 있지 않겠나, 걱정됩니다.
☎ 손석희 / 진행 :
알겠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어떤 삶을 관통하는 신념이라고 할까요. 80평생을 지켜 오신 신념이라면 어떤 걸까요?
☎ 리영희 선생 :
흔히 얘기된 거지만 Simple Life, 검소한 생활과 High Thinking, 이념적으로 사고를 높이 가지는 그런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거냐 설명하기 힘들지만 가령 흔히들 유행들이 많잖아요. 어느 정도 되면 골프 쳐야 하고 어느 정도 되면 뭘 해야 하고 그런 물적 세속적 자기방기를 거부하는 거죠. 나는. 그런 걸 다 치우고 검소하게 생활을 하면서 그래야 사고의 도덕적 논리적 수준의 높이를 순수하게 높여갈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에요.
☎ 손석희 / 진행 :
알겠습니다. ‘토요일에 만난 사람’ 언론인 리영희 선생님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께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가장 반성하신 부분은 어떤 걸까요?
☎ 리영희 선생 :
나는 공적인 문제에 있어선 그렇게 반성을 해야할만한 어떤 자기 부정을 해야 할만한 그런 일을 또 시도 해본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다만 내 개인의 가정생활에서 아내와 가족에게 하도 많은 고생을 시켰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서는 내가 반성을 하죠.
☎ 손석희 / 진행 :
아홉 번 연행되셨고 다섯 번 구치소에 수감되셨고요. 재판도 물론 많이 받으셨고 언론계에서는 두 번 그만두셨어야 했고
☎ 리영희 선생 :
대학에 가서도 박정희 때 쫓겨났다가 박정희 죽고서 복직하고 전두환 이어서 들어오자 또 쫓겨났다가 전두환 말기에 복직해서 대학으로 돌아왔고, 그런 생활이다 보니까 나는 한국의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런 제도화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완전 아웃사이더였던 셈이죠. 그러니까. 밤낮 쓴소리 하는 말이 권력자들의 비위나 거슬리고 함으로써 스스로 내가 그 체제 안에 머물길 거부했던 까닭으로 내 자신이 그런 고생을 많이 한 거죠.
☎ 손석희 / 진행 :
사모님께는 그래서 빚을 갚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 리영희 선생 :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라는 게 이게 나이가 들수록 일생을 같이 한 사람의 젊었을 때 고생에 대해선 참 갚아질 수가 없어요. 아무리 해도.
☎ 손석희 / 진행 :
요즘은 갚으시면서 사시죠?
☎ 리영희 선생 :
네, 그러려고 하면서 사는 겁니다. 요새는. 그런데 이제 비로소 가족과의 좋은생활이 되려고 할 때 이렇게 병이 들어서 쓰러졌으니 참 조금은 안타깝죠.
☎ 손석희 / 진행 :
뭔가를 조금 더 앞으로 한 가지라도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시는 건 없으신지요?
☎ 리영희 선생 :
있죠. 내가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된 것이 10년 됐고 좀 더 책을 볼 수 있고 쓸 수 있고 사상을 굴릴 수가 있었다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보탤 수 있는 뭔가, 주로 저술이지만 할 텐데 이제 전혀 그런 것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굳이 가정을 앞세워서 ‘아, 그랬으면 됐을 걸’ 그런 생각도 안 해요.
☎ 손석희 / 진행 :
책을 더 읽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기자시절에도 굉장히 많은 책을, 엄청난 독서량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 리영희 선생 :
예, 꼭 공부만을 위주로 산 사람은 아닌데 술도 많이 했고 방탕도 좀 했고 남과 다름없이 그냥 살아오면서 한 가지 무지하게 독서를 한 것만은 사실이에요. 원고료가 조금 들어오면 서점에 가서 신간들 그동안에 못 본 것을 꾸려 가지고 집에 들어오는데 밤에만 와, 와서 대문 밖에 책 꾸러미를 이렇게 놓고 대문 두드려서 들어가요.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갔다가 나와서 책 꾸러미를 다시 가지고 들어오는 거야. 왜냐하면 그거 보면 집사람이나 어머니나 식구들은 어떻게 하는데 뭐 책만 사오냐고 좋아하지 않거든. 그래서 그런 수법으로 하면서까지 굉장히 독서를 많이 했죠.
☎ 손석희 / 진행 :
최근에 그러면 읽으신 적은 어떤 게 있으십니까? 요즘은 책 읽기 힘드시다고 하셔서요.
☎ 리영희 선생 :
이 눈 때문에 그렇고 또 정기가 쇠약하니까 오랜 시간 못 보죠.
☎ 손석희 / 진행 :
얼마 전에 <레미제라블>을 다시 원서로 다 떼셨다면서요?
☎ 리영희 선생 :
네, 1천 8백 페이지인데 형무소 들어가서 읽은 것을 이제 한 20년 지나서 또 한 번 읽고 싶어져서 그랬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오늘 그 방송 듣는 많은 젊은이들이 많이 좌절할 것 같습니다. 아파트에 사시는데 제가 들어올 때 보니까 아파트에 문패가 걸려 있어요. 대개 아파트에는 문패가 잘 안 걸려 있는 편인데 거신 이유가 혹시 있으십니까?
☎ 리영희 선생 :
난 언제나 개인의 권위, 인격, 독립적 사유, 판단, 가치, 이런 걸 중요시하기 때문에 집단으로서의, 난 사실 국가보다 개인의 인간의 중요성을 더 앞세워요. 그렇게 거창하게 나가지 않더라도 내가 7년 동안을 6.25에 군인으로서 군번으로 살아왔단 말이에요. 6.25에 남들은 3년 반 하니까 제대했는데 연락장교, liaison officer라고 하는데 흔히 통역장교라고도 하던데 후에. 잘 하니까 안 놔줘. 휴전이 됐는데도 못 나왔다고요. 그래서 7년을 했어요. 7년 동안... 거기서 굴복한 채 7년 사는 동안에 번호로만 불렸단 말이에요. 나는 없고, 나의 가치는 없고 오로지 번호. 그 다음에는 이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여러 차례 형무소를 드나들면서 그때마다 소위 수번호, 이 번호로 가슴에다 번호를 적어 가지고 그걸로 불리었고 그 번호가 하여간 나를 대신했어. 그것이 내가 견딜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거예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 했다면 뭐 되지도 않는 일이지만 싫으니까 번호보다 내 이름 문패를 걸어놓은 거예요.
☎ 손석희 / 진행 :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이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습니다만 뜻하지 않게 베스트셀러가 된 그런 시대에 어떤 말씀을 주시고 싶으실까요?
☎ 리영희 선생 :
괴테가 후배들에, 또는 동료문학인들에 대한 충고를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뭐라고 답변했느냐 하면 나의 충고를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그 전제 하에서 충고를 하겠다 뭐 이랬거든요. 이건 뭐 10년, 20년 사이의 변화도 막 심하고 내일 어떻게 될지 이 자연현상까지 포함해서 정치제도의 변화도 그렇거니와 누가 감히 어떤 자신을 가지고 예견하고 그에 대해서 후에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권고하거나 충고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난 없어요. 난 없어.
☎ 손석희 / 진행 :
알겠습니다. 오늘 여러 가지로 솔직하시고도 또한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 리영희 선생 :
고맙수다.
☎ 손석희 / 진행 :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 리영희 선생 :
뭐, 아무런 알맹이 없는 얘기가 되지 않았나 오히려 그게 걱정입니다.
☎ 손석희 / 진행 :
아닙니다. 감사드리고 늘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리영희 선생 :
예, 그래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