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모 신문지면 구석에 무가지 이야기가 조그맣게 실렸다. 글을 쓴 사람은 왠 교수였는데 그가 말하는 논지를 세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무가지는 자원을 낭비한다.
2. 무가지는 수많은 광고주에 휘둘린다.
3. 무가지는 가치없는 기사의 확대 재생산에 앞장선다.
나는 왠만하면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라는 행위를 너그럽게 보아 넘어가주긴 하지만 오늘은 시간여유도 있고 하니 이 기사를 좀 씹어보기로 하자.
무가지란 無價紙라고 쓰는데 일반적으로 돈을 받지 않고 나누어주는 일회성 신문을 말한다. 이 기사에서는 흔히 지하철 역 입구 주변에서 무차별적으로 배포하는 무가지들을 가리키면서 너희들은 해충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무가지라고 하면 옛날에 자주 뿌리던 호외를 들 수 있겠지만 그렇게 과거를 파들어 가는 것 말고, 우리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신문으로서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따지자면 아마 교차로나 벼룩시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십수년전 이 신문이 처음 선을 보였을 때도 공짜로 얻는 신문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강렬했던데다 당시에는 무작위 대중들이 용이하게 서로 접촉할 수 있던 공간이 -누구나 접속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았던 PC통신을 제외하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시점에서 그 용도가 물물교환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긴 하지만 어쨌든 벼룩시장을 위시한 무가지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져서 당시 아류신문들을 양산했고 어느정도 재정이 된다 싶은 신문들은 외부기고글을 넣거나 문화면을 신설하는 대담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인터넷이 발달하게 되어 모든 사람이 얼마든지 커뮤니티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된 현재는 이들 신문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사실 더이상 필요가 없기도 하고- 대표적인 신문 가로수, 교차로, 벼룩시장만이 남아 오프라인에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온라인 발행은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그런 물물교환을 위주로 하는 신문이 아닌 전철 안에서의 이동시간을 때울 수 있는 기사거리를 제공하는 오징어땅콩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무가지가 창궐했다. 사실 이 영역은 보통 전철역사내에서 팔고있는 스포츠신문이 차지하고 있던것이었는데 이들 무가지는 벼룩시장 등이 가지고 있던 장점인 타블로이드판형을 이어받아 한 개인이 그다지 많은 영역을 점유할 수 없는 전철 안에서 별 불편을 받거나 혹은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신문구독을 가능하게 했고 매일아침 출근시간을 보면 알지만 별 받을 생각이 없는 사람도 엉겁결에 신문을 받아들게 만드는 초 적극적공세를 펼치는데 전철에 타는 사람은 보통 신문을 두 부 이상들고 타지 않으므로 이는 스포츠신문의 판매부수를 획기적으로 떨어뜨렸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무료로 배포했다는 점이다. 무가지는 공짜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무가지라고 불리는 만큼 무료로 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무가지가 그만큼 많은 사람의 손에 들릴 수 있게 되는 첫번째 이유는 어쨌든 그게 공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가지는 기본적으로 전철 안에서의 이동시간을 소모하는데 그 목적을 두는것인만큼 왠만해서는 무가지가 외부로 돌아다닐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일반언론에서 왜 무가지를 물고 늘어질까. 심지어 얼마전에 심심해서 뉴스를 검색해봤더니 무가지에 반대하는 기자들의 모임이란 것도 있더라.
사실 무가지를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기득권세력인 일반언론이 신흥세력에게 파이를 뺏기는 것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오늘 글을 쓰기 시작한것은 이런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위함이 아니라 가장 첫머리에 나왔던 무가지반대논리가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무가지는 출근시간에만 집중적으로 배포하기 때문에 배포시에는 조금 거리를 차지할 수도 있겠으나(기사에서는 이걸 문제로 삼기도 했다) 그게 통행혼잡을 일으키는 정도도 아니고 배포가 끝나면 배포아줌마들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또 신문지는 단가때문에 재생용지로 만들어지며 소비자 손에 직접 전해지기 때문에 공갈부수(총 부수를 올리기 위해 찍어놓고 폐처리하는 짓거리)가 일반 신문에 비해 크지않고 전철 내 혹은 역사에 버려지는 모든 무가지들은 고물수집하는 분들이 알아서 깔끔하게 수거해가시기 때문에 무가지에 의한 자원낭비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광고주에 대한 얘기는 정말 어이가 없는데 확실히 무가지가 공짜로 나누어질 수 있는것은 무가지에 실리는 수많은 광고주들이 내는 광고비덕분이긴 하지만 중요한건 얘네는 편집방침이라는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광고주들이 휘두루는것은 신문사의 편집방침으로 어떤기사를 몇 면에 얼마만큼의 면적으로 집어넣을까 혹은 사설에서 광고주가 까라는 애를 얼마나 깔까를 정하는 것이 바로 이 편집방침인데 무가지는 기사를 편집하는게 아니라 이미 나와있는 기사를 그냥 가져다 쓰고 있고 사설이라는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의 활동연령층이란 출근길에 그런거 읽어봤자 머리만 아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독자가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생길 수 있는 쓸데없는 사설보다는 만화페이지 한 장 더 늘리는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무가지가 대동소이한 기사,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다시말해서 얘네들은 광고주에게 휘둘릴 편집방침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으며 광고주로서도 무가지를 이용해 여론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상상은 하지 않기 때문에 무가지가 수많은 광고주에 휘둘린다는 환타지성 주장은 정말 언어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광고주에 휘둘려 그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하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는 라면 물끓을 시간만 생각해도 알수 있다. 1위는 조중동이다. 조중동은 이미 한몸이기 때문에 공동 1위라기보다는 그냥 같이 1위다.
또 한가지 주장은 무가지가 가치없는 기사의 범람에 앞장선다는 내용인데 사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 뭐라고 욕을 해야 될까 고민이 든다.
무가지는 기사를 사온다. 걔네들이 작성하는 쭉정이같은건 사실 신문기사라기보단 그냥 면수를 채우기 위한 글이다. 걔네들이 사오는 기사는 누가 쓰나? 신문기자들이 쓴다. 오히려 높이 사줘야 할 점은 얘네는 초기기사를 수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하면 독자들을 엿먹이는 편집을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일반 신문사들에 비해 좀 더 사건전달 자체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진실을 알기위해서 몇 종류의 신문을 뒤적거려야 하는 일간지보다 낫지 않은가? ...뭐 사실 낫지는 않지만-_-
한 발자국 더 나아가자면 무가지에 실리는 기사는 그래도 시간때울 가지는 있는데 소위 유력 일간지에 실리는 기사들은 아주 추잡하고 왜곡되어 보는 사람을 진흙탕속으로 홀리며 또 그네들이 포탈에 제공하는 기사들은 아주 조악하고 저급하여 글쓴이의 기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기사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하여 일방적으로 기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이 안되는 거 아닌가 하는 판단을 확신받을 수 있는 통로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오프라인만의 폐쇄되었었던 신문시스템에 비해 현재는 댓글시스템으로 기사에 대한 직접적인 비평이 가능해졌고 오프라인 기사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기자가 이 기사를 제정신으로 쓴건지 약먹고 쓴건지 아니면 현장에서 쓴건지 단란주점에서 쓴건지 대충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얻을 수 있게 된 점은 정말 기술발전이 가져온 얼마 안되는 장점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정신나간 댓글도 많이 있지만 어떤 것이 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흐름'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며 라면먹으면서 김치찢는 시간동안만 생각해봐도 가치없고 왜곡된 기사의 확대재생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무가지들인지 일반 신문사들인지 잘 알 수 있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난 소위 메이저신문사라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까 1위했던 조중동은 사실 일요신문류의 3류저질폭로주간지들보다도 낮게본다. 왜냐면 얘네는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조중동과는 달리 어찌됐든 진실을 폭로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부수판매를 올리기 위해서라는 전혀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나온 행위이자 잘 맞지도 않는다는 약점은 있지만, 사회를 고발해야하는 신문의 역할은 달성하고 있지 않은가.
일요신문을 사는 500원은 조선일보를 사는 500원보다 낮은 가치를 갖는가?
무가지를 받아드는 오른손은 중앙일보를 집어드는 오른손보다 지적으로 떨어진다 볼 수 있나?
전혀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