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가고싶다 2
중국에서 소비된 식재료로서의 인육
수없이 많은 일본인론(日本人論)중에서도 루스 베네틱트 여사의 「국화와 칼」과 이어령 교수의「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고전의 명저라고 불리우며 당당히 그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렇게 유명세를 가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아직까지「국화와 칼」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서평을 위한 두 책 중, 이미 읽어보아서 더 수월하게 평을 쓸 수 있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아니라 구태여「국화와 칼」을 선택한 것은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아직 읽지 못한 이 유명한 책에 접해보기 위함이 첫째이고,「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으면서 느꼈던 일본인, 일본사상에 대한 신선했던 충격을 동급의 명성을 지니고 있는「국화와 칼」에서도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 두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국화와 칼」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책의 내용이 일본인들 심리의 깊은곳을 꿰뚫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루스여사는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저자인 이어령 씨가 청년기까지의 시절을 일제치하에서 보냈고 일본인들과 함께 살며 일어를 쓰도록 강제되어있던 상황에서 좋든 싫든 일본인들의 문화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득할 수 있었던데 반해 루스여사는 간접사료들만을 인용하여 일본인론에 관한 책을 완성시켰다. 그렇게 쓰여진「국화와 칼」은 과연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국화와 칼」은 기본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통치방법에 대한 참고자료가 필요해진 미국 정부에서 기획하여 용역형식으로 만들어지게 된 책이지만 상당히 다양한 부분까지 손을 대고자 시도한 노력들이 엿보인다. 책의 1장은 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2장과 13장에서 미국의 통치에 있어 참고해야 할 사안들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나 나머지 장들은 그와는 관련 없이 정말 일본인론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 3장과 4장에서는 일본인들이 집단속에서 형성하는 위치에 대해서, 5, 6장은 온(恩)에 대해, 7, 8장은 기리(義理)에 대해, 9장은 정(情), 10장은 가치의 충돌, 11장은 일본인의 자기수양법, 12장은 어린아이들과 그에 관련되는 어른들의 의식세계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고 각 장이 그리 유기적이지는 않고 한 개의 장 속에서도 주제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어 이 장별(章別)구분은 그다지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언어구조와 실생활로부터 그들의 기저의식을 파악하고자 했던「축소지향의 일본인」과는 다르게 일본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적(現象的) 행동양식으로부터 기저의식을 파악하는 차별화된 구조를 가지고는 있으나 -「국화와 칼」이 먼저 출판되었기 때문에 이 표현은 적절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 이 책이 가진 유명세를 생각해보면 사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가장 첫 번째는 이 책의 시점이다.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씨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일본인론 집필자라는 신분이다. 그녀는 제 1장에서 이 약점에 대한 방어책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 전체에 걸쳐 그 약점이 완벽하게 극복되지는 못하고 있다. 루스는 미국에서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일본 관련 자료들의 풍부함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여러 가지 ‘일본의’ 특징들은 사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3장의 내용인 사회적 간격을 유지하는 모습이나 12장의 어린아이를 키우는 모습에 대한 서술에 이르면 동양인 독자로서는 ‘이것이 어찌하여 굳이 일본의 특징을 나타내는데에만 인용되어야 할 사례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루스 여사는 일본인이 가진 일본인만의 특색을 말하기 보다는 미국인이 보는 동양의 특성을 서술하면서 그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일본만의 특성이라 지레짐작 해 버리고 논리를 전개시켜간다. 서양인의 눈에서야 자신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양식이 신기하게 느껴졌겠지만 이런 선입관을 가지고 전개시킨 논리는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이었다.
두 번째는 참고했던 자료들의 문제이다. 일단은 선정기준이 문제된다. 물론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당시 출판되어 있었던 자료들에도 한계는 있었겠지만 루스여사는 주로 미국, 일본학자들의 자료만을 인용하고 있으며, 내용자체도 미국인과 일본인만을 비교하고 있다. 264p를 보자
『미국인은 ‘보는 나’를 자기 안에 있는 이성적 원리로 간주하고, 위기에 임해서도 빈틈없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행동하는 것을 자랑으로 하는데, 이에 반하여 일본인은 영혼의 삼매경에 몰입하여…….』
『일본인이 이 신조를 표명하고 있는 가장 극단적인 표현은, ‘죽은 셈치고’라는 표현으로……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서구어로 번역하면, 우선 ‘산 송장’ 이라고 하겠는데, 서구 어느나라의 언어에서도 이 ‘산 송장’이라는 말은 혐오의 표현이다…….』
이 표현만이 아니라 동양 어느 나라와의 비교도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은 책 도처에 널려있다. 그렇지만 루스여사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안경을 쓴 당사자가 렌즈의 처방을 알 수 없듯이 일본학자들의 자료에 치우치기보다는, 그리고 자신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시점을 가지고 있을 자국 학자들의 자료보다는 일본의 바로 옆에서 일본을 바라볼 수 있었던 한국이나 중국의 자료를 인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어야 했다고 본다. 그 결과 실지로「국화와 칼」은 동양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인의 특성과 일본인들만이 가진 일본인들의 특성을 뭉뚱그려 일본인들의 특성으로 서술해 버린 어정쩡한 책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 문제는 책 서술에 인용한 전체적인 자료들이 현대의 시점에서 참고로 하기에는 시기가 오래되었다는 점이다.「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시대가 지나도 크게 변화하지 않는 언어습관이나 전통의 문화양식들을 가지고 서술한 결과 내용의 영속성(永續性)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 반하여「국화와 칼」은 40~50년대 당시의 일본인들의 행동양태를 가지고 서술한 부분이 서술기반의 주를 이루고 있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수긍하기가 힘든 부분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199p에서는 이런 서술이 있다
『어떤 잡지에서 현대의 한 일본인은 말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결혼의 참다운 목적은, 아이를 낳고, 이에 의하여 집단의 생명을 존속시키는데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 이외의 목적은 어느 것이나, 결혼의 참다운 의미를 왜곡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일단 ‘어떤 잡지의 현대의 한 일본인’ 과 같은 모호한 인용대상을 선택한 점은 논외(論外)로 간주하더라도 현대 일본에서의 결혼목적이 아직도 이와 같을지 에는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272p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데,
『일본의 여자들은 아이를 많이 낳기를 바란다. 1930년대 전반의 평균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31.7명인데, 이것은 동부 유럽의 다산국과 비교해보더라도 높은 비율이다. 1940년도 미국의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17.6명이었다. 더구나 일본의 어머니는 일찍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세의 여자는 다른 연령의 여자에 비해 가장 많이 아이를 낳는다.』
현대 일본과는 전혀 상관없는 데이터가 되어버린 30년대의 데이터를 가지고 해석한 결론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료 선택에서의 많은 문제점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역시 부정확한 자료를 참고했다는 점일 것이다. 책에 따르면 47, 69, 187, 220, 226, 284p에서 모두 잘못된 자료를 인용하고 있거나 혹은 자료를 잘못 인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잘못된 자료로 전개한 논리가 과연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루스는 1장에서 늘어놓은 장황했던 변명이 결국 자신의 한계를 더욱 부각시키게 되는 함정에 걸리게 된다.
이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국화와 칼」이 일본인론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 해석의 탁월함 때문일 것이다. 1, 2, 13장을 제외한 각 장에서 루스는 외부인이 가지는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핵심에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카스트제도를 도입하여 일본인들이 가지는 적당한 위치를 갖고자하는 마음을 설명했던 3, 4장은 좀 무리한 감도 있지 않았나하고 생각했지만 타인에게 신세지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일본인의 심리를 설명한 5, 6장, 표면에 드러나는 명분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심리를 설명한 7, 8장은 저자가 일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수준이 매우 높았고 일본인에게 있어 선과 악의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10장, 껍질만 남고 사상이 사라진 일본불교를 설명하는 11장에서는 그 경지가 극에 달한 느낌을 준다. 물론 간접자료에 의존하는 한계로 인해 그 이론의 실 적용사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쉽고 또 개발되고 개발된 현재의 일본인론에 비교해보면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시대상과 연구를 위해 준비된 환경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국화와 칼」이 왜 고전의 명저로 손꼽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이 본 일본’을 서술하는 책이나 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말 보편적인 가치를 객관적으로 서술하여 어떤 사람에게도 읽힐 수 있을 만큼의 책은 사실 정말 찾기 힘들다.「국화와 칼」은「축소지향의 일본인」을 볼 때만큼의 만족감을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그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책을 볼 수 있다면 이 책 또한 나름의 장점이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장점은 이윽고 나의 일본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디딤돌로 승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국화와 칼」을 읽기로 선택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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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로 회유해역 분포도
1 | 메바치, 키하다(9~11月) | 11 | 메바치(9~3月) |
2 | 혼마구로 |
12 | 빈쵸(8~2月) |
3 | 메바치(8~12月) | 13 | 메바치, 키하다(10~12月) |
4 |
미나미마구로(3~9月) |
14 | 미나미마구로(2~8月) |
5 | 메바치, 키하다(12~4月) | 15 | 메바치, 키하다(3~6月) |
6 | 미나미마구로(7~10月) | 16 | 메바치(7~10月) |
7 | 메바치, 키하다(周年) | 17 | 혼마구로 |
8 | 미나미마구로 | 18 | 메바치 |
9 | 미나미마구로 | 19 | 메바치(8~12月) |
10 | 혼마구로 |
1장 인간(Human)
질문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질문2-꿈은 필요한가?
질문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질문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질문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질문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질문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질문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질문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질문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질문1-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질문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3-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질문4-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질문5-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질문6-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질문7-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질문8-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질문9-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질문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질문1-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질문2-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질문3-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질문4-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질문5-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질문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질문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질문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질문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질문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질문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질문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질문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질문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질문1-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질문2-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질문3-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질문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질문5-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질문6-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질문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질문8-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질문9-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질문10-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질문11-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질문12-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질문13-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질문14-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질문15-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질문16-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질문1-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
질문2-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질문3-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질문4-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질문5-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질문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질문7-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질문8-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질문10-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질문11-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여기에 매칭펀드 방식으로 1000원이 더해져
매달 총 2000원이 도너스캠프 공부방 아이들에게 기부되지요.
프로그램은 2008년 말까지 지속됩니다.
나눔배너 2.0의 자세한 내용과 다는 방법, 소스 받기는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나눔배너 2.0을 달면 매달 공부방 아이들이 행복해져요
http://donorscamp.tistory.com/entry/donationbann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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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다음에 있는 배너에는 노란 바탕에 Hunger Site 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23일 토요일은 대학동기 류진경의 결혼식으로 아침부터 강남 고속터미널에 갔다.
그리고 황망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심지어는 그 방법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형태의 자살이었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혀 정말이냐고 되묻는 한정된 반응만을 언제까지고 보일 수 밖에는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통령직을 벗어던지고 봉하마을로 내려와 '야~ 기분좋~다!' 고 외쳤던 사람이 과연 자신에게 '대통령님'이라는 거창한 칭호가 붙는 것을 기꺼워 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그를 높이지 않는다면 도데체 이 나라에서 누굴 높여야 한단 말인가?
노무현'님'이라는 호칭이라면 그는 동의할까?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당신의 호칭에 최소한의 존칭이라도 붙이지 않으면 머리가 이상해져 버릴 정도로 당신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땅바닥에 늘러붙은 시커먼 껌딱지들에조차 선생님, 교수님, 박사님 하는 존칭을 붙이길 전혀 꺼려하지 않는 정신적 미숙아 혹은 정신적 파산자들이 풍기는 썩은내가 진동하는 이 세상에서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존경을 표하지 않는다면 그 악취에 취해 금방이라도 내가 졸도해 버릴 것 같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님을 존경했고 그를 시대의 어르신이었다 평가하고 있었기에 그를 잃은 내 세계는 지금 격심한 충격에 빠져있다.
2주일 전.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엄마의 죽음조차 아직 삼키지도 못한 상황에서 장영희 서강대교수님과 노무현 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죽음까지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너무 불쌍하다.
어쨌든 '그들'이 받들어 모시는 전지전능한 의미로서의 신이라는 게 없다는 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이번 일은 그 공상(空想)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전두환도 살아있고 노태우도 살아있고 강만수도 살아있고 전여옥도 살아있고 부시도 살아있고 쥐박이도 살아있는데
노무현님은 자살을 '강요'당했고 도저히 맞설 수조차 없는 끝없이 거대한 절망과 암흑에 밀린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여기저기 타살설이 떠돌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살을 '강요'당했을지언정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은 했으리라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감옥에 갇혀서 자기가 만들어 낸 모든 것들을 부정당하고, 자기가 사랑한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자기가 믿었던 가치가 산산조각나며, 그 상황이 시간이 경과되어갈 수록 더욱 악화(惡化)될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현상과 직면한 자존심 강한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라는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의 자살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이해한다.
인간이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방위(方位)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좁아진 그에게,
방아쇠는 그리 큰 것이 아니어도 그 발동(發動)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쥐박이가 얼마나 미웠을까.
취임하자마자 한 짓거리가 정부조직 개편 - 말이 개편이지 사실상 조직을 통째로 들어내고 아예 다른 걸 갖다 심어버린 저 무식한 적출(摘出)과 이식(移植). 그나마도 노무신(神)의 흔적을 지우려고 그런 짓거리를 행해놓고는 잘 돌아가지 않으니까 나중에 은근슬쩍 원래의 조직을 복귀시키는 멍청하고도 한치앞도 보지못하는 쥐의 행각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졌을까.
참여정부동안 잘 끌어와서 이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될 정도로 진전시켜 놓은 수많은 대형사업들과 계약들을 '노무신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취소시키고 걸레짝을 만드는 짓거리를 보면서 얼마나 통탄(痛嘆)을 했을까.
그렇게도 욕을 먹고 누더기가 될지언정 통과시켜 최소한의 안전장치(安全裝置)로서 기능하길 바랐던 부동산을 위시(爲始)한 수많은 정책들이 정권을 넘겨주자마자 뿌리째 뽑혀나가고 상상도 못할만치 극악(極惡)한 것들로 바뀌는 -심지어 자신이 아래에 두고 쓰던 관료들조차 그 짓에 합세하여 개지랄떠는 현상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았을까.
썩은내가 나는 고인물같이 되어버린 정부조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겠다 싶어 만든 과거사, 5.18, 인권위원회 등의 수많은 위원회들이 폐지되고, 축소되어 결국에는 불구(不具)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얼마나 눈물을 속으로 삼켰을까.
쥐박이가 '전직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능청떠는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하고 그래도 지켜본 자신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고 난도질하고 짓밟고 사지를 찢어버릴듯이 들어덤비는 저 씨발놈이 얼마나 미웠을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행한 기록물반출에 거품물고 지랄떨면서도 어쨌든 지는 항상 뒤에 숨어서 유감이라며 찍찍거리는 저 쥐새끼가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
그런 쥐박이의 미친 행위를 보좌하고 수행하는 행위를 마치 자발적 노예처럼 실행했던, 혹은 해야 했던 청와대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했을까.
그 과정의 중심에서 쥐박이에겐 유리하게, 자신에게는 한없이 불리하도록 담론(談論)의 확대재생산에 앞장선 조중동을 위시한, 무가지보다 더욱 그 가치가 떨어지는 쓰레기 신문들과 하루종일 홈쇼핑전파만 주구장창 쏘아대는 케이블채널보다도 저급한 KBS, SBS들 방송국의 견고한 동맹에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꼈을까.
그런 정권의 나팔수들이 매초(每秒)마다 불어대는 독기서린 나팔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 사람이 그랬을리 없다하고 믿던 보좌관이, 의원이, 친구가, 형님이, 그리고 아내마저 결백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했을 때 얼마나 비탄해했을까.
그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마치 일제시대 순사가 독립군을 고문하듯이 자기가 사랑하고 믿음을 준 사람들을 더럽고 치사하고 비열하고 치졸하며 또한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모습을 그 눈에 담고 그 귀로 들어야 하는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자신이 혼을 다해 지난 5년동안 쏟아넣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데체 무엇 하나 성장한 데가 없는 저 국민이라는 이름의 미숙아들이 한데 입을모아 조중동이 만들어낸 공격논리를 그대로 받아 증폭시켜 귀청이 떨어져 나갈듯한 소음으로 한반도를 들썩이는 작태(作態)에 얼마나 마음으로부터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고 또 눈물을 흘렸을까.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의 불씨를 밝힌 상징적 인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면,
계급문화가 아예 그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는 거대한 병영국가 대한민국에서 권위주의와 뒤틀린 계급사회의 부조리함을 타파하려고 한 인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말할 수 밖에는 없다.
권위라는 건 걷어찰 것 밖에 그 효용성이 없는거라는 나의 소신을 대한민국 대통령의 위치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겼고 또한 그 소신을, 수 많은 풍파(風波)를 맞아가며 온 몸을 던져 관철하고 지켜냈던 사람.
그래서 나는 노무현님을 존경한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님을 위해 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권위주의와 계급주의의 망령을 걷어내고자 했던 그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노력은 극한까지 늘어난 스프링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운동과 완벽하게 동일한 속도로 무위(無爲)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근조(謹弔) 라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 붙여야 할 말이 아니다. 서거(逝去)라는 말 조차 권위를 걷어차던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뿐이다.
그는 죽지조차 않았다.
이다지도 그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전국 분향소에 끝없이 긴 줄을 늘어뜨리고 있다. 언젠가는 하나둘씩 그를 잊어가는 사람들도 나타나겠지만 그의 유지를 받들어 대한민국에서 친일파를 청소하고 권위주의를 걷어차 버릴 사람도 또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죽은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또한 나의 마음속에
언제까지고 살아있을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그의 얘기를 해 준 나의 손자가 죽을 때까지.
그 손자의 손자가 또한 그 명을 다할 때까지.
관 앞에 서서 눈물 짤 필요는 없다.
그는 거기에 있지 않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내 마음속에 살아 숨쉴 수 있다면 근조라는 단어를 꺼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근조를 붙여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친일파 쥐박이와 한나라당,그리고 그의 수족들. 또한 그들에 동조하는 우둔한 국민들이 스스로를 무서운 속도로 침식하고 갉아먹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이야말로 근조해야 할 대상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격(格)이 그 기능을 멈춘지는 벌써 1년도 2개월이나 지났지만 자신을 회복시켜주려는 의사(醫師
)를 목졸라 죽임으로 인해 실질적 뇌사판정을 받아버린 대한민국의 영정(影幀)에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검은 리본을 매달 수 밖에는 없다.
謹弔 大韓民國
아직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지는 않겠다. 좀 더 정확한 정보가 모인 후에 정리하려고 한다.
지금은 그저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슬퍼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고발 프로그램은 그 효과를 극적으로 상승시키기 위하여 상당히 자극적인 소재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고 또 내용적인 면에서는 시청자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부적인 팩트는 쳐 내는 경우가 많다. 아래 소개하는 것들도 모두 그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집중하고 영상을 볼 수 있다면 편집자가 왜 이런 사례를 선택한 것일까, 삭제된 디테일은 어떤 것일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상들에 팩트를 근본으로부터 비틀어버리는 심각한 왜곡은 전혀 없다고 단정하며 제공되는 영상 그 자체만으로 판단해도 어디에 내 놓아도 밀리지 않을 만큼 훌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이 결론은 나의 배경지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내려진 것이며 당신이 나의 그것들을 신뢰할 수 있다면 아래 소개하는 영상들이 하는 얘기도 동일한 수준으로 신뢰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직접 시청한 영상만을 소개하며 계속 업데이트 할 예정이고 당연한 얘기지만 영상에 관한 추천도 환영한다.
*식코 (Sicko, 2007)
http://migame.tv/section/ucc/view.asp?msg=150380&bd=27
http://migame.tv/section/ucc/view.asp?msg=150381&bd=27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 2006)
http://andu.hanafos.com/pub/enjoy.asp?conkey=405692
http://andu.hanafos.com/pub/enjoy.asp?conkey=405698
*시대정신 (Zeitgeist: The Movie, 2007)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1825476&q=%BD%C3%B4%EB%C1%A4%BD%C5
*시대정신 2 (Zeitgeist II Addendum 2008)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2012431&q=%BD%C3%B4%EB%C1%A4%BD%C5
*PD수첩
http://www.imbc.com/broad/tv/culture/pd/vod/index.html
*이제는 말할 수 있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cantell/vod/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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