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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전까지 있었던 연구실의 교수님이 앞으로 연구자의 길에 뛰어들 사람들을 위해 보석같은 글을 써 주셨다. 개인적으로 몇 번 더 읽어보고 싶어서 한번 번역해봤다.
원문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A Researcher’s Perspective

크게 보면 이 세상 모든 교육시스템은 피라미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식획득을 추구하는데 우리 교육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초등교육은 중등교육으로 이어지면서 그 폭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다. 최종적으로 연구하는 단계에까지 오면 우리는 그 넓은 영역 중에서 어떤 좁은 의미의 토픽 한개를 골라낸 상태에 이른다.
 
 
 
연구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아주 많다. 기초연구, 응용연구, 최신연구, 혹은 아주옛날옛적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것은 내 연구생활을 뒤돌아보면서 현재 연구를 하는 학생들에게 도움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숙련된 연구자를 위한 것이 아니며 또한 방법론 같은 걸 얘기할 생각도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네 마음속에 연구자가 되겠다는 씨앗이 싹을 트기 시작했을까? 보통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언제,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뭔가 재밌는 아이디어가 생기고 발전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긴시기동안 어떤 주제가 나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 흥미라는 게 점점 커지면서 결국에는 우리를 그 영역에 대해 더 잘 알게 하고 더 깊은 공부를 하게 만드는 식이다. 뭐, 다 옳은 말이다. 근데 사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겠다고 결정을 하면 좀 더 세부적인 연구주제를 잡는데서 보통은 벽에 부딪히고는 한다. 그 이유는 지금의 이 바닥에서 학생이란 연구하는 주제가 한정되어 있는 어떤 학부의 특정 그룹에 들어가거나, 내가 별 생각도 없었던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우선은 이상적인 경우만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일단 우리가 후속연구를 위해 지금 당장 달라붙어야 하는 과제를 잡았다면 인생은 훨씬 더 쉬워진다. 그 연구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면 너는 그 행위를 짐짝처럼 여기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 개인적으로 연구를 관두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은 뭐냐면, 네가 연구를 해야 하는 확고한 동기를 가지고 있어야 삶이 잘 돌아간다 이거다. 이 사회는 학위를 가진 사람에게 무한한 존경과 지위를 부여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연구를 시작한 동기라면... 네 연구인생은 그리 즐거운 것은 못될 것이다. 미래를 생각해보라. 그러니까 박사를 딴 이후의 삶을 말이다. 만약 네가 연구에 대한 진짜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3-4년은 당연히 즐거운 삶이 될 것이고 그 후의 것들은 완전 보너스인 거다!!
 
 
 
연구를 어디서 할 것인지 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게 하버드가 됐든 델리대학이 됐든 네가 연구할 분야에 있어서는 어디가 최고인지, 환경은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예를 들자면 학풍이라든지, 도서관이나 복지시설은 어떠한지, 아니면 연구실이 도저히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대도시 한가운데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너에게 주어진 책임은 어느 수준인가? 혹시 너는 연구에 100%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병간호를 해야 하는 가족이 있지는 않은가? 가족을 만나러 가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진 않은가? 이것들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연구라는 행위에 대해 환상을 갖지마라. 이건 노가다이며 일종의 전일제 직업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연구가 단순히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너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또렷한 주관을 가지라. 때로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지도교수와 얘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도교수는 너에게 자기 지식을 넣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그저 너보다는 훨씬 많은 경험이 있어서 가끔씩은 조언을 해줄 수도 있는 너의 연구 동료일 뿐이다. 지도교수가 너보다 더 많은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연구는 너의 창의성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상상하는데 드는 노력을 아끼지 마라!! 코흘리개 애들처럼 굴지 말고 알아서 움직여라. 선생님이 뭐 하라고 시킬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 마라. 처음엔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지도교수나 동료들과 토론할 때는 용감하게 의견을 제시하라. 아이디어를 표현해보고 그 바보 같은 것들을 나중에 다시 읽고 고쳐보라. 그게 결국엔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될 지라도 오픈 마인드로 대처하라.
 
이런걸 거치면서 너는 연구자가 되어 가는 거다. 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무대 가운데로 나와서 네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연구를 하면서 너는 여러 단계를 순서대로 밟아 나가게 될 것이다. 별거 아닌 작업, 큰 작업을 거치다가 심지어는 박사를 받기 전에 매우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작고 별거 아닌 과제라도 반드시 생각한 뒤 조직하고 나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어떤 일을 받게 되더라도 항상 명확한 실행 자세를 갖고 끝까지 해내도록 하라. 완고해질 필요까진 없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한 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던 게 제대로 안돌아간다면 그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여라. 프로젝트 진행에 문제가 있다면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지도교수와 상담하라. 그러다가 전체 실행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능한 한 빨리 포기하라.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을 때 다른 것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실질적인 문제인지 신중히 생각하라. 박사과정은 일생을 걸어야 하는 작업이 아니다(연구는 그래야 하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작업이므로 현실적이 되어라. 그리고 3학년이 될 때까지 프로젝트를 바꾸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네 연구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실질적 어려움을 지도교수에게 알리길 꺼리지 마라. 성실하고 솔직하라. 스토리를 만들지 마라. 나는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다. 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또한 지도교수의 시간도 낭비하게 하지 마라!! 지도교수와 상담할 수 없는 개인적 문제가 있다면 어쨌든 그 얘기를 받아줄 수 있는 누군가와 얘기하라. 개인적인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남자친구 혹은 여자 친구와 냉전중인 상태에서 연구가 제대로 될리 없다. 우선은 그런 개인적 문제나 감정적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고 나서, 그리고 나서 연구실로 돌아오라.
 
 
 
연구하는데 있어 소통은 정말 중요하다. 결과물을 가지고 동료와 토론하라. 그룹 앞에 나가서 발표하고 피드백과 제안을 받으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데에 인색하지 말라. 비판적인 피드백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라. 누군가 너의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면 그 혹은 그녀가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하고 생각하라. 그 코멘트에 숨겨진 진짜 이유가 있진 않나? 좀 더 나아질 여지가 있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그 코멘트가 너를 매우 불편하게 하기에 지금 당장은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지라도 그들이 준 소중한 코멘트에 감사를 표하라. 날이면 날마다 너를 공격하는데 재미들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을 공격하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최고의 선택지는 그냥 무시하는 것이다!! 무시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술이라도 한잔 먹어라.
 
 
 
네가 한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라면 권위있는 기관에 의한 인정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판정하는 법, 진행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하는 방법은 잘 알고있어야 한다. 너 자신의 작업을 주기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하라.
 
 
 
너는 아마 연구그룹에서는 신참일 것이다. 네가 그 곳을 잘 안다고 해도 그건 그저 학부생으로서이다. 이제 너는 다른 역할을 갖게 되었다. 너는 지도교수가 데리고 있는 단 한명의 학생일 수도 있고 수많은 멤버들 속의 한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할 것인가?
 
 
 
언제나 그렇지만, 시작은 항상 중요하다. 너무 걱정하진 말라. 할 수만 있다면 아예 걱정 자체를 하지 마라!! 해야 할 일을 천천히 진행시켜라. 네가 어떤 그룹에 들어갈 때마다 나타나는 즉흥적인 환영과 거부에 대해 파악하라. 너무 심한 환영과 너무 심한 거부, 어느 쪽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의 시간을 가져라. 의사소통 해가는 와중에 분위기는 점점 나아져 갈 것이다. 판정을 내리지 마라. 얘기를 하되 언제라도 그들로부터 배울 준비를 하라. 서먹서먹한 상태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네가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네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라!! 그리고 난 후에야 너는 비로소 배울 수 있게 된다.
 
 
 
연구실은 너의 두 번째 집이나 마찬가지다. 연구실 혹은 일터에는 주기적으로 오도록 하라. 무언가를 매일매일 배울 수 있다. 심지어 할 게 아무것도 없는 날이라도 그냥 와서 선배 혹은 후배들과 얘기하고 놀라. 지금 당장은 시간낭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너는 성장한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미나는 수업과는 다르다. 처음에는 모든 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참여는 하라.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뭔가 정보의 조각이라도 하나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세미나는 참여할 가치가 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이 너의 지적가능성과 능력을 향상시켜줄 것이다.
 
 
 
네가 만들어낸 결과를 컨퍼런스에 가져가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발표하라.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록하라. 모든 아이디어, 핵심사항을 연구노트에 적는 것을 잊지마라. 네가 3년 동안 일어날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말고 당장 적어라!!
 
 
 
처음부터 논문더미를 안고 자리에 앉지마라. 논문 첫줄부터 이해가 안 된다고 해도 당황하지 마라. 전문용어를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차고 넘친다. 도서관에 들어가 긴 시간을 들여 자료를 찾는 옛날 방식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인터넷에 떠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올 정도로 방대하지만, 참고자료를 찾기 위해 ‘언제나’ 인터넷만을 참고하지는 마라. 시간이 날 때는 도서관에 가서 옛날 교과서도 같이 찾아보라. 아마 학부시절에 배웠던 것들이 사실은 엄청 재밌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시절에는 네가 그걸 정말 싫어했었더라도 말이다!!
 
 
 
연구 분야의 최신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따라갈 여유가 없다면 최신 리뷰아티클을 읽어라.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되, 0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하지는 마라. 모든 역사를 다 섭렵하면서 현재까지 오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은 현재의 것들부터 공부하고 나서 필요할 때 뒤로 돌아가면 된다.
 
주의!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하루 종일 그러고 있지는 말고 실험도 하라. 만약 네가 이론연구를 하고 있다면 주제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만일 내가 별 관심이 없는 과제를 할당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실 요즘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제를 고를 수는 없다. 투자문제가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 지도교수나 그룹이 집중하고 있는 과제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답을 하자면 이렇다 : 참여하기 전에 가능한 한 넓은 의미에서 주제가 자신이 하고싶은 것과 일치되는 곳을 우선 찾도록 하라. 코스를 시작하고 나면 타당성조사같이 재미없는 걸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전하라. 네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영예롭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 완전히 생명이 끝난 토픽이란 건 없다. 항상 얼마간의 가능성이 거기에 존재한다. 그것들 속에서 너를 매혹시키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물론 뭔가 문제가 있다면 지도교수와 의논하고 지시에 따라 수정사항을 실행하라.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정신적인 것들이고 네가 할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들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은 지도교수가 네 얘기에 관심이 없다는 걸 눈치챌 수도 있다. 그 혹은 그녀가 나빴을 수도 있다. 우선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내가 분별없게 행동하지는 않았나? 내가 지도교수 말을 안들었던건 아닌가? 하루 이틀 볼게 아니라 최소 3~4년은 보고 지내야 할 지도교수와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성격 그 자체를 가지고 뭐라 하진 마라.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라. 그저 포기하는 것만으로 네 목소리가 안정되고 몸의 떨림이 가라않고 침착함이 뱃속으로부터 올라오는 놀라운 경험을 해 보라. 너는 또 한 가지의 사회적 적응기술을 몸에 익힌 것이다.
 
 
 
연구실을 깔끔하고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라. 다만 잘 정리된 상태로는 생활하되 매일 연구실을 청소하고 정리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는 마라. 어느 정도 어질러진 상태는 있을 수밖에 없다, 괜찮다. 잠을 충분히 자고 건강을 위한 무언가를 하라. 연구실에 오랜시간동안 있어야 한다면 휴식을 취한다든지 낮잠을 잔다든지 하란 말이다. 여튼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논문을 써 보라 : 너는 이 분야의 신참이다. 논문을 쓴다는 건 문학작품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다. 프레젠테이션은 중요하지만 우리는 판타지를 원하는 게 아니다!! 우선 초안을 쓰라. 그걸 바로 네 동료에게 가져가지 말고 일단 앉아서 한 번 읽어봐라!!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또 다시 읽어봐라!! 장소를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논리를 확장시키되, 그 초안은 버려라!! 이런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정말로 더 이상 아주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면 선배나 지도교수에게 가져가서 너의 고충을 털어놓도록 하라. 너를 나아가게 할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해야 할 점이 있는데. 네가 너의 논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너만큼 네 연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정보를 우겨넣지도 마라. 반복해서 체크하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장만 남기고 다 잘라내라. 과학스타일로 글을 쓰되 필요하다면 그 영역의 다른 논문에서 사용된 스타일을 가져와도 좋다. 참신함을 어필하지 마라!! 이 세상에 우리 선조들이 안 한건 없다고 생각하라!!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발견하고 또 발견하는 것뿐이다.
 
 
 
과학에서의 정직성 : 네 연구는 그저 연속된 큰 덩어리의 아주 조그마한 부분일 뿐이다. 네가 시작한 것도 아니고 너에게서 끝날 것도 아니다. 이 제한된 시간 속에서 네가 이 바닥에 기여하는 동안 항상 요구되는 것은 정직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주의사항과 제한사항, 제반사항을 명기할 것이며 혹시 데이터가 출판된 이후에라도 문제가 발견된다면 즉시 재검토하여 수정본을 출판하라.
 
 
 
연구는 항상 새로운 발견만을 의미하는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제한된 시간동안 네가 하고 있는 분야에서 적당한 깊이까지 파고들어가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네가 새로운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겠지만 선행연구가 틀렸다는 걸 발견할 수도 있고, 혹은 선행연구가 옳았다는 걸 재확인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더 추가하는데 그칠 수도 있다. 이 모든 행위가 다 좋은 연구이므로 결과 자체를 가지고 너무 안절부절 못하진 마라. 네 결과를 아인슈타인과 비교하지도 마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벨상을 바라지도 마라!! 그런 건 저절로 굴러가게 내버려두고 즐거운 연구생활을 영위하라!!
2014/10/01 21:32 2014/10/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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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한번 포스팅한 적이 있지만(역반무테 찾아 삼만리) 나는 역반무테라고도 불리는 언더림 안경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건 완전무테에 비해 내구도가 확보되면서도 안경프레임에 의해 시야가 잘리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애니메이션에서 빨강 언더림을 착용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왔는데, 일본에서는 안경업계가 콜라보레이션해서 캐릭터들의 안경을 실제 발매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케이온의 마나베 노도카라든지,
http://www.zoff.co.jp/sp/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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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Q의 마키나미 마리라든지,
http://item.rakuten.co.jp/a-achi/ev-type-mar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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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의 아케미 호무라라든지가 그중 잘 알려진 캐릭터라 할수 있을것 같은데,
http://www.cospa.com/detail/id/00000044857


정리하면 이런 느낌인 모양이다
『舞-HiME』菊川雪之
『けいおん!』真鍋和
『かんなぎ』木村貴子
『海月姫』倉下月海
『ゼロの使い魔』タバサ
『怪談レストラン』大空アコ
『スイートプリキュア』調辺アコ
『よんでますよ、アザゼルさん。』佐隈りん子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Q』真希波・マリ・イラストリアス
『ガールズ&パンツァー』武部沙織
『魔法少女まどか☆マギカ』暁美ほむら

http://dic.pixiv.net/a/%E3%82%A2%E3%83%B3%E3%83%80%E3%83%BC%E3%83%AA%E3%83%A0


다만 애니캐릭이 쓴 안경을 재현한 언더림의 경우 솔직히 만화속 캐릭보정빨이 큰 부분도 있고, 콜라보 기획상품이라 재질도 그냥저냥한걸로 만들기 때문에 코스프레로 한두번 쓰고 말거면 몰라도 실생활에서 쓰기에는 부족한 점이 크다.

어쨌든 다음에 안경을 바꿀때는 빨강 언더림을 쓰고 싶어서 조금 찾아봤는데 몇개 괜찮아 보이는게 있어서 URL을 붙여놓는다. 다만 언더림은 수급이 일정치가 않아서 아마 구입하려고 할 때는 다른 디자인이 나와있을 것 같긴 하다.

다만, 역시 그럴듯한 물건들은.. 가격도 그럴듯하다.
http://blog.livedoor.jp/moe_megane/archives/55590632.html


*RIDOL R-107
http://www.daigakudo.com/blog/opticals/ridol02.html
http://item.rakuten.co.jp/meganeyasan/ridol_107/

* jf2566_3000
http://item.rakuten.co.jp/3glass/jf2566_3000/

*less than human po6po10
http://item.rakuten.co.jp/3glass/worst_2gou/

*KH-9049 c4
http://item.rakuten.co.jp/auc-dis-mega/kh-9049-c4-kh032/

*1.74 양면비구면렌즈
http://item.rakuten.co.jp/auc-dis-mega/raku-so-004/#raku-so-004

https://www.ohmyglasses.jp/guide/products/lens/prime-lens/#performance07
2014/04/05 21:21 2014/04/0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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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

- 이현세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2013/10/09 23:40 2013/10/0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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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 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2013/09/22 09:29 2013/09/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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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葛孔明

先帝 慮漢賊 不兩立 王業 不偏安 故 託臣以討賊也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賊彊也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是故 託臣而不疑也
臣 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思惟北征 宜先入南 故 五月渡瀘 深入不毛 幷日而食 臣 非不自惜也 顧王業 不可得偏安於蜀都 故 冒危難以奉先帝之遺意 而議者謂爲非計
今賊 適疲於西 又務於東 兵法 乘勞 此 進趨之時也 謹陳其事如左
高帝 明並日月 謀臣 淵深 然 涉險被創 危然後安 今陛下未及高帝 謀臣 不如良平 而欲以長策取勝 坐定天下 此 臣之未解一也
劉繇王朗 各據州郡 論安言計 動引聖人 群疑滿腹 衆難 塞胸 今歲不戰 明年不征 使孫策 坐大遂幷江東 此 臣之未解二也
曹操智計殊絶於人 其用兵也髣髴孫吳 然 困於南陽 險於烏巢 危於祁連 偪於黎陽 幾敗北山 殆死潼關 然後 僞定一時爾 況臣 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 此 臣之未解三也
曹操 五攻昌覇不下 四越巢湖不成 任用李服而李服 圖之 委任夏侯而夏侯敗亡 先帝每稱操爲能 猶有此失 況臣駑下 何能必勝 此 臣之未解四也
自臣到漢中 中間朞年耳 然 喪趙雲 陽群 馬玉 閻芝 丁立 白壽 劉郃 鄧銅等 及曲長 屯將七十餘人 突將無前 賨叟 靑羌 散騎 武騎一千餘人 此皆數十年之內 所糾合四方之精銳 非一州之所有 若復數年 則損三分之二也 當何以圖敵 此 臣之未解五也
今民窮兵疲 而事不可息 事不可息 則住與行 勞費正等 而不及蚤圖之 欲以一州之地 與賊持久 此 臣之未解六也
夫難平者 事也 昔 先帝敗軍於楚 當此時 曺操拊手 謂天下已定 然後 先帝東連吳越 西取巴蜀 擧兵北征 夏侯授首 此操之失計 而漢事將成也 然後 吳更違盟 關羽毁敗 秭歸蹉跌 曹丕稱帝


先帝 慮漢賊 不兩立 王業 不偏安 故 託臣以討賊也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賊彊也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是故 託臣而不疑也
선제께서는 한을 훔친 역적과는 함께 설 수 없고, 왕업은 천하의 한모퉁이를 차지한 것에 만족해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여기시어 신에게 역적을 칠 일을 당부하셨습니다. 선제의 밝으심은 신의 재주를 헤아리시어, 신이 역적을 치는 데에 재주는 모자라고 적은 강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역적을 치지 않으면 도리어 왕업이 망할 것이니 어찌 일어나 치지 않고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이에 그 일을 신에게 맡기시고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臣 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思惟北征 宜先入南 故 五月渡瀘 深入不毛 幷日而食 臣 非不自惜也 顧王業 不可得偏安於蜀都 故 冒危難以奉先帝之遺意 而議者謂爲非計
신은 그 같은 선제의 명을 받은 뒤로 잠자리에 누워도 편안하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맛이 달지 아니했습니다. 북으로 위를 치려하면 먼저 남쪽을 평정해야 되겠기에 지난 5월에는 노수를 건넜습니다. 거친 땅 깊숙이 들어가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애쓴 것은 신이 자신을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왕업을 돌아보고, 성도에서 만족해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여겨, 위태로움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선제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게 좋은 계책이 못된다고 말했습니다.

今賊 適疲於西 又務於東 兵法 乘勞 此 進趨之時也 謹陳其事如左
이제 적은 서쪽에서 지쳐 있고 동쪽에서도 오나라에게 힘을 다 쓴 끝입니다. 병법은 적이 수고로운 틈을 타라 했으니 지금이야말로 크게 밀고 나아갈 때입니다. 거기에 관해 삼가 아뢰오면 아래와 같습니다.

高帝 明並日月 謀臣 淵深 然 涉險被創 危然後安 今陛下未及高帝 謀臣 不如良平 而欲以長策取勝 坐定天下 此 臣之未解一也
고제께서는 그 밝으심이 해나 달과 같고 곁에서 꾀하는 신하는 그 슬기로움이 깊은 못과 같았으나, 험한 데를 지나고 다침을 입으시며 위태로움을 겪으신 뒤에야 비로소 평안하게 되시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폐하께서는 고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곁에서 꾀하는 신하도 장량이나 진평만 못하시면서도 장기적인 계책으로 이기고자 하시며 편히 앉으신 채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십니다. 이는 바로 신이 이해하지 못할 첫번째 일입니다.

劉繇王朗 各據州郡 論安言計 動引聖人 群疑滿腹 衆難 塞胸 今歲不戰 明年不征 使孫策 坐大遂幷江東 此 臣之未解二也
유요와 왕랑은 모두 일찍이 큰 고을을 차지하여, 평안함을 의논하고 계책을 말할 때는 걸핏하면 성인을 끌어들였으되, 걱정은 뱃속에 가득하고 이런저런 논의는 그 가슴만 꽉 메게 하였을 뿐입니다. 올해도 싸우지 아니하고 이듬해도 싸우러 가기를 망설이다가 마침내는 손권에게 자리에 앉은 채로 강동을 차지하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바로 신이 풀지못한 두 번째 일입니다.

曹操智計殊絶於人 其用兵也髣髴孫吳 然 困於南陽 險於烏巢 危於祁連 偪於黎陽 幾敗北山 殆死潼關 然後 僞定一時爾 況臣 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 此 臣之未解三也
조조는 지모와 계책이 남달리 뛰어나고 군사를 부림에는 손자․오자를 닮았으나, 남양에서 곤궁에 빠지고 오소에서 험한 꼴을 당하며, 기련에서 위태로움을 겪고, 여양에서 쫓기고, 북산에서 지고, 동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야 겨우 한때의 평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신하들이 재주도 없으면서 위태로움을 겪지 않고 천하를 평정하려 하니 그게 신이 알지 못할 세번째 일입니다.

曹操 五攻昌覇不下 四越巢湖不成 任用李服而李服 圖之 委任夏侯而夏侯敗亡 先帝每稱操爲能 猶有此失 況臣駑下 何能必勝 此 臣之未解四也
조조는 다섯 번 창패를 공격했으나 떨어뜨리지 못했고, 네 번 소호를 건넜으나 공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복을 써보았으나 이복이 오히려 죽이려 들었고, 하후에게 맡겼으나 하후는 패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매양 조조가 능력 있다고 추키셨으나 오히려 그같은 실패가 있었는데 하물며 신같이 무디고 재주없는 사람이 어떻게 반드시 이기기만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신이 알 수 없는 네번째 일입니다.

自臣到漢中 中間朞年耳 然 喪趙雲 陽群 馬玉 閻芝 丁立 白壽 劉郃 鄧銅等 及曲長 屯將七十餘人 突將無前 賨叟 靑羌 散騎 武騎一千餘人 此皆數十年之內 所糾合四方之精銳 非一州之所有 若復數年 則損三分之二也 當何以圖敵 此 臣之未解五也
신이 한중에 온 지 아직 한 해가 다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운․양군․마옥․염지․정립․백수․유합․동등과 그 아랫장수 일흔 남짓을 잃었습니다. 언제나 맨 앞장이던
빈수․청광이며 산기․무기를 잃은 것도 천 명이 넘는바 이는 모두 수십 년 동안 여러 지방에서 모아들인 인재요 한 고을에서 얻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다시 몇 년이 지난다면 이들 셋 중 둘은 줄어들 것이니 그때는 어떻게 적을 도모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알 수 없는 다섯번째 입니다.

今民窮兵疲 而事不可息 事不可息 則住與行 勞費正等 而不及蚤圖之 欲以一州之地 與賊持久 此 臣之未解六也
지금 백성들은 궁핍하고 군사들은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할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 (할 일을 그만둘 수 없음은 곧) 멈추어 있으나 움직여 나아가나 수고로움과 물자가 드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일찍 적을 도모함만 못합니다. 그런데도 한 고을의 땅에 의지해 적과 긴 싸움을 하려 하시니 이는 신이 알 수 없는 여섯번째 일입니다.

夫難平者 事也 昔 先帝敗軍於楚 當此時 曺操拊手 謂天下已定 然後 先帝東連吳越 西取巴蜀 擧兵北征 夏侯授首 此操之失計 而漢事將成也 然後 吳更違盟 關羽毁敗 秭歸蹉跌 曹丕稱帝
무릇 함부로 잘라 말할 수 없는 게 세상 일입니다. 지난날 선제께서 초 땅에서 (조조와의) 싸움에 지셨을 때 조조는 손뼉을 치며 말하기를 천하는 이미 평정되었다 했습니다. 그러나 뒤에 선제께서는 동으로 오월과 손을 잡고 서로는 파촉을 얻으신 뒤 군사를 이끌고 북으로 가시어 마침내는 하후연을 목 베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조조가 계책을 잘못 세워 우리 한이 설 수 있게 해준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되 뒤에 오가 맹약을 어기매 관우는 싸움에 져서 죽고 선제께서는 자귀에서 일을 그르치시어 조비는 다시 천자를 참칭할 수 있었습니다.

凡事如是 難可逆見 臣 鞠躬盡瘁 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 所能逆覩也
무릇 일이 이와 같아 미리 헤아려 살피기란 실로 어렵습니다. 신은 다만 엎드려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애쓸 뿐 그 이루고 못이룸, 이롭고 해로움에 대해서는 신의 총명이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두 번째 출사표를 낼 때다.
2013/02/22 17:00 2013/02/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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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작아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고 너무 지쳐서 일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젼을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방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사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평화를 더 많이 예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이 시의 출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포스트를 참조.
http://www.woodener.com/entry/%EC%9A%B0%EB%A6%AC-%EC%8B%9C%EB%8C%80%EC%9D%98-%EC%97%AD%EC%84%A4-%EC%A0%9C%ED%94%84-%EB%94%95%EC%8A%A8
2013/02/04 21:25 2013/02/0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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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잡담
5년전에 썼던 리포트. 오랫만에 읽어보니 재밌어서 올려본다. 이제와서 보니 참고문헌 표시가 아주 개판이다ㅇㅇ 이건 뭐 위키피디아를 인용하질 않나...ㅋㅋ



중국에서 소비된 식재료로서의 인육



머리말

다리달린 것은 책상 빼고는 못 먹는 게 없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국에는 엄청난 수의 요리가 수많은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져 왔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소고기를 넣어 만든 신선로식의 요리 후어꿔(火鍋), 만찬에 잘 등장하는 췌이피루주라는 이름의 새끼 돼지 통구이, 양고기보신탕 빠이주양러우(白煮羊肉)같이 우리들에게 친숙한 고기들에서부터 시작해서 비둘기고기를 잘게 썰어 다른 재료와 볶아내는 성차오루커, 바다제비의 침으로 만들어진 제비집을 이용한 탕옌워, 시웅즈앙이라는 이름의 곰발바닥찜도 있으며 희한한 재료로는 아주 잘 알려진 원숭이 골 요리, 꿀에 찍어먹는 살아있는 새끼 쥐요리에서 고양이, 천산갑, 오소리, 사슴새끼가 들어있는 자궁까지도 요리에 이용한다.

이렇게 상상도 못할 만치 광범위한 종류의 식재료들이 중국인들의 손에서 아름답고 맛있는 요리로 탈바꿈되어 나오는데, 나는 그런 수많은 요리재료들 중에서도 좀 특이한 요리재료에 시선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중국이 소재가 되는 옛날이야기 중에는 아주 맛있는 만두집에서 매일같이 만두를 먹던 사람이 하루는 자기의 만두에서 손톱이 나왔길래 주방을 훔쳐봤더니 그 집은 인육을 만두속으로 쓰는 곳이더라 하는 얘기가 있다. 형태는 좀 다를지 몰라도 중국인이 경영하는 맛있는 음식점이 알고 보니 인육을 쓰는 곳이었더라는 줄기를 사용한 이야기들은 상당히 많고 또 유명하기도 해서 그런 인육요리점을 소재로 한「팔선반점의 인육만두, 八仙飯店之人肉叉燒飽」나 우리나라의 「신장개업」같이 영화화까지 된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들은 과연 정말 이야기일 뿐이고 허구일 뿐이었을까. 구전되는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당시의 사회와 현실을 반영한다. 사실 지금이야 사람고기를 먹는다고 한다면 상당히 불쾌하고 혐오스럽게 받아들여지며 그런 식인풍습같은 건 미개한 식인종들이나 가진 나쁜 문화 아니냐 하고 얘기하겠지만 사실 식인은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행위이며 실제로 식인이 사라진 것은 근래 몇 십 년 내의 일로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완벽하게 다른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는 이 식인에 대한 사례를 살펴보면서 식인이 옳다 나쁘다하는 가치판단보다는 좀 다른 측면인, 중국에서 소비된 식재료로서의 인육에 초점을 맞추어보려고 한다.

1. 카니발리즘으로서의 식인

(1) 중국에서의 사례들

중국의 이야기책에 보면 사람을 먹는 장면이 특별한 비유적 표현 없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금병매」를 제외한 4대기서의 모든 책이 식인을 표현하고 있다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조조에게 쫓기게 되어 어떤 집에 투숙하게 됐는데 그 집 주인이 유비에게 헌상할 식료가 없어 자기 처를 죽이고 그 고기를 유비에게 헌상, 이에 감동한 유비는 그 후 그 집주인을 고관에 봉했다는 내용이 있다.

「수호전」의 경우 무송이 반금련을 죽인 죄로 귀양을 가는 도중에 어떤 주막집에서 털이 들어간 만두를 먹게 된다. 알고 보니 이것은 사람고기로 만든 만두로, 워낙 가난했던 주막집 부부가 음식을 만들 고기가 없어 지나가는 사람을 죽여서 만두로 만들어서 팔았던 것이다. 이능같은 경우, 가짜 자신을 죽인 후 그 집에서 밥을 차리려고 할 때 “아차, 내가 눈앞에 맛있는 고기를 두고도 잊어버릴 뻔 했군”하며 사체에서 고기를 잘라내 구워서 반찬으로 먹는다.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아기모양을 한 불로불사의 과육을 먹은 뒤(이것도 식인의 한 갈래를 암시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지만)로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요괴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다. 삼장법사뿐만 아니라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도 요괴들의 식인욕구에 내내 시달리는데 그 식인방법의 묘사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원나라 극중에「趙禮讓肥」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왕망 말년에 있었던 천하소란의 때에, 조효(趙孝)、조례(趙禮)라고하는 두 명의 형제가、난을 피해 산속에 숨어살며 모친에게 효행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 조례가、마무(馬武)라고 하는 도적에게 포획되었다. 마무는 자기 자신을、

某今在二這宜秋山虎頭寨一.落草爲寇.也是不得已而爲之.毎二一日一要喫二一副人心肝一.今日拿二住一頭牛一.欲待殺二壞他一.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잔인한 사람으로 이 조례를 요리해 먹으려고 했다. 동생의 불운을 알게 된 조효는 곧바로 마무를 찾아가 동생 대신이 되기로 자처한다. 이리하여 마무의 면전에서 두 형제는 서로가 먹히겠다고 다투고 철심장을 가진 마무도 둘의 우정에 감동해 둘 모두를 놓아준다. 결국 동한일통(東漢一統)의 세계가되자 마무는 천하병마대원수가 되어 그의 천거로 조효, 조례형제도 각각 출세한다는 것이 이 극의 줄거리이다.(『元曲選』第二十九册參看)이 조효, 조례의 묘는 지금도 직례성창평현(直隷省昌平縣) 서북쪽에 있는 현장구(賢莊口)에 있다고 한다(『光緒昌平州志』卷十)

그렇다면 식인은 서민들의 이야기에서의 묘사일 뿐일까. 중국왕조의 시작으로 보아도 좋을 하나라왕조에도 식인 고사가 있다.

하왕조의 후예는 병사를 이끌고 약정국을 침공하여 국왕인 백봉의 궁전에 들어갔다. 후예는 백봉궁 안의 재산을 탈취하고 백봉의 시체를 발기발기 찢어 육장(肉醬)을 만들어 하왕인 중강에게 바친다. 그 후 후예는 백봉의 어머니였던 현처와 신하 봉몽에게 살해당해 자신도 육장이 된다. 아들 예왕자는 놀라 궁전에서 도망치려 하나 위병에게 잡혀 살해된다. 하왕조는 아무래도 실증이 안 된 왕조이므로 이것은 이야기의 하나일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단순한 이야기고사의 수준을 넘어 실제 중국문헌에서는 식인 사례가 높은 빈도로 나타나고 있다.

식인행위가 많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기록에 대한 정리내용을 보면 대한제국(大漢帝國)이 건설된 기원전 206년부터 청나라 멸망(1912년)까지의 2천 백여 년간 중국사에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의 기록이 정사(正史, 국가가 편찬한 공식 역사서)에 기록된 것만 해도 무려 220여 차례나 된다.

중국의 정사란 「사기」를 비롯한 二十六史이고, 「자치통감」,「속자치통감」,「명통감」,「문헌통고」,「속문헌통고」등의 자료까지 모두 계산하면 더욱 많은 분량이 될 것이라 한다.

(2) 전 세계의 사례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던 대로 식인행위는 중국에 한정되어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일로 실제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는 학술용어로 정의된 한 연구의 분야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카니발리즘은 스페인어 Canibal이 어원으로서 Canib-는 당시 카리브족을 의미한다. 콜롬부스의 보고로 인해 당시 스페인사람들은 서인도제도에 사는 카리브족이 인육을 먹는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 카리브족의 카리브가 카니브로 변화한 이후, 카니발+ism 의 합성으로 생겨난 단어이다. 세계적으로 일어난 카니발리즘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라틴아메리카

남미의 여러 원주민 종족은 몇 가지 유형의 식인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장례의 일부로서의 식인인데, 오리노코 강 상류의 촌락에 사는 구이아카족들의 매장 식인풍습이 그 좋은 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뼈를 조심스럽게 모아 절구에 넣고 간다. 장례식이 거행될 때 친척들은 이 가루를 국과 섞어 슬프게 한탄하면서 서로 나누고 마신다. 종족에 따라 죽은 사람의 신체 일부만 태워서 먹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재나 뼈를 먹는 것은 화장의 연장이었고, 일종의 제의였다.

둘째로, 인신공희(人身供犧) 의식으로서의 식인풍습이 있다. 이는 죽은 사람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지금부터 200∼300년 전만 해도 멕시코의 아즈텍 왕국에서는 전쟁 포로나 자국의 청년 남녀를 제단에 올려서 묶은 다음 희생자의 가슴을 열어젖히고 심장을 끄집어내는 풍습이 있었다. 캐나다의 휴런족에게도 포로를 밤새 괴롭힌 후 태양이 떠오르면 죽이는 희생의식이 있었는데 이는 전쟁과 태양의 신을 기쁘게 해 주려는 용도였다. 의식이 끝나면 죽은 포로의 몸을 놓고 인육잔치가 벌어진다. 유카탄반도에 거주하던 마야족에게는 제식으로서의 식인풍습이 있어 인육을 Long Pig로 불렀는데 브라질이나 콜롬비아 뽀빠얀에서도 이런 기록이 보이고 있다.

셋째로, 적개심의 고취와 적의 세력 약화를 위한 식인이었다.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식인종’들은 대부분 이런 유형이다. 이런 경우, 흔히 포로들은 죽기 전에 극심한 고문을 당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죽인 포로의 시체를 먹음으로써 적에 대해 증오를 표출하고, 자기 부족에게는 ‘식량’을 제공하게 된다. 이런 경우, 두 번째와 비슷한 인신공희 성격이 가미되기도 한다.

*유럽

기독교에서 식인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는 프랑스인들 침략자들이 식인을 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십자군 알베르 덱스와 라울 드 카엘 연대기를 인용하면 1차십자군 원정당시(1098년 12월) 마라트 안 누만에서 대량 학살이 일어났는데 안티오키아 공방전 당시 심각한 기근에 괴로워하던 십자군들이 이 마라트 안 누만에서 인육을 먹는 행위를 하였다고 한다.

"우리 십자군들은 투르크인과 사라센인(무슬림을 얕잡아 부르는 말)의 인육을 먹는 일은 물론 개조차 먹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알베르덱스-

"마라에서 우리들은 이교도(무슬림) 어른들을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았다. 또 그들의 아이들을 꼬챙이에 구워 불에 구웠다" -라울 드 카앵-

"마라에 주둔한 군대에 무시무시한 기근이 엄습하였던바 사라센인들의 시신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마라시 지휘관이 로마교황에게 보낸 서신의 일부-

이슬람의 역사가 이븐 할둔(Ibn Khaldūn)도 십자군이 인육을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세아니아

1768년 뉴질랜드에 상륙한 캡틴 쿡의 일기에 쓰여져있는 내용이다

「11월 24일 북쪽에서 태풍이 하루 종일 불어와 계획대로 전진하고자 하는 우리들을 방해했다. 오후에 몇 명의 선원이 원주민들과 놀기위해 상륙했다. 거기서 그들은 방금 죽인 젊은이들의 목과 장기가 모래밭에 굴러다니는 것을 보았다. 심장이 가장 커다란 카누 끝에 포크같이 생긴 것으로 꽃혀있었다. 선원 한명이 목을 주워들고 배로 돌아왔다. 배위에는 원주민 한명이 선원 전원과 탑승자 대부분이 보는 앞에서 인육을 먹어보였다」

파푸아뉴기니를 비롯한 주변 인도네시아 섬의 원주민들에게 식인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일본

에도시대 4대기근의 시기에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메이지3년, 형부성변관포고로 인체각부위의 밀매를 금한 공문서가 남아있다. 또한 태평양 전쟁 시 일본군은 각지에 식량보급이 두절되었었기 때문에 전사한 병사의 사체나 낙오된 병사를 비밀리에 죽여서 그 고기를 서로 빼앗아먹는 사태가 빈발하여, 군 상층부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1944년 12월 뉴기니전선의 일본군제18군은 「우군병사의 시체를 먹는 것을 금함」이라는 명령을 내려, 이를 어긴 4명이 처형되었으나 이 포고는 아사직전의 말단병사들에게는 오히려 생존수단으로서의 인육식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다(적군장병의 사체를 먹는 행위를 금하는 기술은 없고,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서는 비전투원을 포함한 주민이 일본군병사에 의해 살해되어 먹힌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태평양전쟁시의 마샬제도에서는 일본인병사가 조선인군속을 죽여 고기를 먹은 사실이 판명되었기 때문에 지역촌장과 조선인군속이 궐기하여 일본군에 의해 전원 살해된 사건도 있었다. 또한 태평양 전쟁 시에 일어난 식인사건으로 ひかりごけ사건이 유명하며 전쟁이 끝난 평시에도 식인사건의 사례가 계속 났다.

*한국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는 斷指, 割股가 유명하다. 신라 때 상덕이라는 자는 부모님이 병으로 고생하실 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잘라 국을 끓여드렸다고 하는데 이 넓적다리 혹은 허벅지살의 소비사례는 상당히 많으며 숙종 22년 2월 5일의 숙종실록에서는 평안도의 한 백성이 사람고기를 먹었으나 임금은 그것이 몹시 굶주려서 실성했기 때문이라 판단, 특별히 사형을 감면하라고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후한서(後漢書)」제 69권 부분에서는 왕망(王莽)말기 천하가 어수선할 때 카니발리즘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적고 있고, 당나라 중화3년 황소라는 자의 군대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는데, 용마채라는 거대한 맷돌 수백기를 갖추고 사람들을 넣어 뼈와 함께 갈아 자신의 병사들에게 식용으로 공급했다고 한다(당서「唐書」). 아래는 자치통감에 실린 소란시에 있었던 인육소비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年代 「記事」

(1)唐僖宗中和二年(八八二)四月 「長安城中.斗米直三十緡.賊賣二人於官軍一以爲糧.官軍或執二山寨之民一(良民避亂入山築柵自保者)鬻之.人直數百緡.以二肥瘠一論價.」

(2)僖宗中和三年(八八三)六月 「時民間無二積聚一.{黄巣}賊掠人爲糧.生投二於碓磑一.併骨食之.號二給糧之處一.曰二舂磨寨一.」

(3)僖宗光啓三年(八八七)六月 「{揚州}城中乏食.樵採路絶.宣州軍始食人.」

(4)同年九月 「高駢在二{揚州城内}道院一.秦彦供給甚薄.左右無食.至下然二木像一.煮二束帶一食之.有中相啗者上.」

(5)同年十月 「楊行密圍二廣陵(揚州)一.且二半年一.城中無食.米斗直錢五十緡.草根木實皆盡.以二菫泥一爲食之.餓死者大半.宣{州}軍掠人.詣肆賣之.驅縛屠割.如二羊豕一.訖無二一聲一.積骸流血.滿二於坊市一.」

(6)僖宗文徳元年(八八八)二月 「{李}罕之.所部.不二耕稼一.專以二剽掠一爲貨.啗人爲糧.」

(7)昭宗龍紀元年(八八九)六月 「楊行密圍二宣州一.城中食盡.人相啗.」

(8)昭宗大順二年(八九一)四月 「{王}建陰令下東川將唐友通等.擒二{韋}昭度親吏駱保於行府門一.臠中食之上.」

(9)同年七月 「{孫儒}悉焚二揚州廬舍一.盡驅二丁壯及婦女一度江.殺二老弱一以充食.」

(10)昭宗景福二年(八九三)二月 「{李}克用逆二{王鎔軍}一.戰二於叱日嶺下一.大破之.斬首萬餘級.河東軍無食.脯二其尸一而啗之.」

(11)昭宗乾寧元年(八九四)五月 「王建攻二彭州一.城中人相食.」

(12)昭宗天復二年(九〇二)十一月 「是冬大雪.{鳳翔}城中食盡.凍餒死者.不可勝計.或臥未死.已爲二人所一※[咼-口].市中賣二人肉一.斤直錢百.犬肉直五百.{李}茂貞儲※[亻+待]亦竭.以二犬一供二御膳一.上鬻二御衣及小皇子衣於市一.以充用.」

(13)昭宜帝天祐三年(九〇六)九月 「軍築壘圍二滄州一.……城中食盡.丸土而食.或互相掠啖.」

(14)後梁太祖開平三年(九〇九)十二月 「劉守光圍二滄州一.……城中食盡.民食二菫泥一.軍士食人.……呂選二男女羸弱者一.飼以二麹麪一而烹之.以給二軍食一.謂二之宰殺務一.」

(15)太祖乾化元年(九一一)八月 「{劉}守光怒二{孫鶴之諫一己}.伏二諸質上一.令二軍士※[咼-口]而一之.」

(16)末帝貞明二年(九一六)九月 「晉人圍二貝州一踰年.……城中食盡.人爲糧.」

(17)末帝龍徳二年(九二二)九月 「鎭州食竭力盡.……{晉軍入城}執二{張}處瑾兄弟家人.及其黨高濛、李、齊儉一.送二行臺一.趙人皆請而食之.」

식인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니발리즘론에서 들고 있는 일반적인 식인의 이유를 인육의 소비이유를 기준으로 재정리해 보았다.

1. 단순히 인육을 취득하고 그 영양분을 얻기 위함

가. 기아

1) 식량부족

2) 조난

나. 전시

1) 원정시 외딴곳에서 고립되었을 때

2) 공성전시 양식이 떨어져서

다. 미식(기호품)

2. 인육의 소비로 어떤 사회적 파급력을 창출하고자 하는 의도

가. 의식을 목적으로 한 식인

1) 제식으로서의 식인

2) 승리축제

3) 단체의 입문식

4) 추수제식

5) 장례제식

나. 주술적 식인

1) 죽은 자에 대한 애착에서 그의 혼을 이어받는 의미의 식인

2) 인육 혹은 피를 마시면 마법사 혹은 마녀가 될 수 있다는 마법적 믿음

3) 특정한 사람의 특정 부위를 먹으면 그 사람의 그 특징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4) 약용, 질병치료

다. 자신의 마음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다수에의 전시효과(展示效果)를 노림

1) 충성

2) 형벌

3) 증오, 복수

4) 효행

5) 위엄과시

6) 정신병

그런데 중국의 식인 경향은 다른(혹은 서양)권역에서 일어난 식인의 경향과는 좀 다른 형태를 보인다. 기아나 전시로 일어나는 식인은 일반적으로 문화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이 그 당시 당사자가 처한 상황의 급박함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권역별 구분이 의미 없다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사회적 파급력을 창출하기 위한 의도로서의 식인을 보면 서양권역에서는 무언가의 의식을 목적으로 하는 식인이 많은데 반해 중국에서는 전시효과를 위한 식인의 사례가 많이 나타난다.

2. 실제 소비에 있어서의 특징

(1) 식재료로서의 인육

그리고 그것보다도 중국의 식인이 타권역의 식인과 훨씬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인육을 일반적인 식재료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백과사전에 비유할 수 있었던 당나라 도종의가 쓴 「철경록(輟耕錄)」이라는 책의 想肉이라는 항목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나이 먹은 마른 남자와 여자는 요파화(饒把火)라 부르고 젊은 여자는 불미갱(不美羹)이라 한다. 어린아이를 일러 화골란(和骨爛)이라하고 이 모두를 통틀어 양각양(兩脚羊)이라 호칭한다.」

여기서 양각양이란 두 발을 가진 양의 의미로, 인간을 양처럼 식용하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화골란이란 뼈와 고기를 같이 구워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는 말이고 여자의 고기는 갱(국)에 어울리기 때문에 불미갱이라 하는데 계륵편이라는 책에는 下羹羊이라 적히고 있다. 요파화란 고기가 딱딱하여 연료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철경록은 계속해서 사람을 요리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산채로 솥안에 앉혀두고 밖에서 불을 때거나, 철시렁(鐵枷)에 걸치고 산채로 굽는다. 혹은 손발을 묶고 팔팔 끓는 물을 부은 뒤 대빗자루로 맛이 쓴 껍질은 벗겨 내거나, 혹은 자루에 담아 큰 냄비에 넣어 산 채로 찌는 수도 있으며 잘게 사시미를 만들어 소금에 찍어 먹는 경우도 있다. 남성인 경우는 두 다리를 자르고 여성인 경우는 두 유방을 도려내 먹는 것이 최고인데, 그 잔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를 개괄적으로 일컬어 상육(想肉)이라 한다.」

송나라 장작(庄綽)이 쓴 계륵편(鷄肋編)에도 인육 소비사례를 서술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고기를 재료로 한 요리법을 정리해보면, 고기를 잘라 말린 뒤 잘게 썰어 양국(梁麴)과 소금을 섞어 미주(美酒)에 담근 육장(肉醬)을 해(醢)라고 하며 잘게 잘라 사시미처럼 날로 먹는 것은 연(臠) 또는 연육(臠肉)이라 한다. 생강(生姜)이나 육계(肉桂)를 곁들이지 않고 소금기만 하여 햇볕이나 불에 건조한 건육은 포(脯) 혹은 석(腊)이라 하고 얇게 저민 고기를 회(膾)라 한다. 그리고 불에 구운 고기를 자(炙), 오미(五味)를 곁들여 국을 끓인 것을 갱(羹)이라 하며 삶아먹는 것을 자식(煮食), 쪄먹는 것을 증식(蒸食)이라 하는데 실제 인육을 이 요리법에 적용한 사례는 매우 많다. 「한비자 難言編」, 「제왕세기」에 따르면 은나라의 대표적 폭군으로 잘 알려진 紂王은 자신에게 불행적(不行蹟)을 간한 신하를 나쁘게 보아, 익후를 자(炙), 귀후를 포(脯), 매백을 해(醢)로 만들었다. 또 주왕은 신하인 황비호의 아내 경씨를 희롱하다 거절당하자 그녀를 해로 만들어 남편인 황비호에게 하사하여 먹게 하는데 황비호는 이에 격노, 군사를 일으켜 주왕을 제거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여자고기의 호칭인 하갱양도 이 갱(羹)요리에서 나온 말이다. 송인이 송나라 문공을 죽인 남궁만이나 맹획을 해(醢)로 만든 사실이 「左傳」莊公12년 항목에 나타나고, 공자의 문하생인 자로가 위국(衛國)의 대부(大夫)인 공리(孔悝)의 행정관이었을 당시, 위국에서 일어난 부자간의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만다. 자로의 시체는 잘게 토막 내어져 해(醢)로 만들어졌고 사자에 의해 공자에게 보내진 일화는 유명하다(예기주소, 禮記註疏 6권)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서는 이 인육이 미식(美食)의 목적으로 소비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패자였던 제나라 환공(桓公)은 호화로운 음식을 즐겼는데 일반적인 음식에 질린 환공이 자신의 부하인 역아(易牙)에게 새로운 요리를 요구하자 역아는 자신의 장남을 잡아 증육(蒸肉)을 만들어 바친다.

당나라 장족의 「조야첨재」에는 설진이란 인육애호가가 등장하는데 그의 일화는 다음과 같다.

「측천무후때 항주의 임안위에 설진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사람고기를 좋아했다. 한번은 그에게 돈을 빌려준 부부가 임안에 와 그의 집에 묵게 되었다. 설진은 그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먼저 남편을 살해한 뒤 수은을 넣고 시체를 달여 뼈까지 녹였다. 그 뒤 부인까지 상미(賞味)하려고 했으나 이를 눈치 챈 부인이 담을 넘어 탈출, 현지사에게 고소했다. 지사는 자세한 내용을 조사한 후에 설진을 송청(送廳)하여 백타(百打)의 형에 처했는데, 태사(笞死)했다.」

수나라말기의 인물인 주찬(朱粲)도 식인으로 유명하였는데 양제 말기에 종군하여 장백산의 산적을 징벌하고 그 후 무리를 모아 스스로 왕이라 칭한 뒤 회하를 건너 여러 군현을 공략했는데 이 때 가는 곳마다 살육을 감행하였다고 한다. 주찬은 패전하여 쫒길 때는 병사들에게 “이 세상에 사람고기만큼 맛있는 것이 또 있겠느냐, 걱정할 것 없다. 다른 나라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사람 아니냐”고 하면서 부인들과 어린아이들을 포획, 요리하여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외 인물로 독고장(獨孤莊), 당시대의 고찬이나 장무소, 절도사 이찬화, 송대의 왕언승, 황족 왕계훈, 대문학자 유개, 원의 흠주지사 임천지, 명나라 태조의 다섯째아들 주정왕의 아들인 유희, 조정 유력자였던 유택청, 여성 인육애호가 아농 등 수 많은 인육애호가들이 철경록, 빈퇴록, 문해피사, 자치통감, 야획편, 송사 문원전, 철위산총담, 명사 유택청전 등 수많은 사료들에 실려 있다. 장수나 정부고관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적인데 이는 아마도 이들이 즐겨먹었던 내장이나 구하기 힘든 부위들은 대체적으로 비싸서 일반 서민들은 구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 본다.

이런 사료를 참고해 보았을 때 중국인들은 식인이란 행위를 죄악이라 보거나 터부시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요리의 하나이며 인육은 요리가 되는 식재료의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부분적으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당나라 때는 나라 안에 인육시장까지 생겼다. 당말부터 오대 초기에 걸쳐 중국내 질서가 흐트러져 인육시장이 출현하였다는 사실이 「五代史記」,「資治通鑑」에 실려 있으며 아라비아 상인이 쓴 「중국-인도이야기」에서는 당시 상황을 아래와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다른 절도사를 토멸하면 반드시 그 소령(所領)을 합하고, 영토를 황폐화시키며, 주민을 모두 잡아먹었다. 중국의 법률은 인육을 먹는 것을 허락하고, 인육이 시장에서 공공연하게 판매되고 있다”

가격도 다른 고기에 비해 쌌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중국에서 쌀의 가격은 1두당 40전내지 50전이 보통으로 가장 쌌을 때는 두당 1전 이하일 때도 있으나(한서, 漢書 食貨志上)가장 비쌀 때는 두당 7~80만전까지도 올라갔다.(통감, 通鑑 梁紀十七、太清二年의 條)

이렇게 비쌌던 쌀 가격에 비교해보면

「사천성이 대기근으로 말미암아 민중이 서로 죽여 고기를 먹게 되었다. 부부나 부자가 서로 죽이고, 그 고기를 먹는 자도 있었다. (1644년 이래)3년 동안 천하대란이 일어나 민중이 이곳저곳으로 도망쳐 다니는 바람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어졌다...가정주(州)의 쌀은 1말에 20금, 성도 중경은 50금... 남자고기는 1근에 7전, 여자고기는 1근에 8전에 판매되고 있다...」(청대, 淸代,「客(氵+眞)術」)

「자치통감」천복(天復) 2년의 항에는

「...시장에서는 인육이 거래되었는데, 1근에 1백전의 값이 매겨졌다. 개고기는 5백전이나 했다.」

당시 가난했던 민중으로서는 인육을 외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2) 인육의 맛

식도락으로서의 인육소비가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는데 과연 인육은 얼마나 맛있었던 것일까.

기아의 극한에 도달한 상황에서 선택하게 되는 인육의 섭취는 고기 자체의 맛과는 관계없이 당시의 급박함으로 신경물질의 분비가 활발해져 허기를 채웠다는 포만감이 인육을 맛있었다고 느끼게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 사례로는 인육의 맛을 유추하기는 힘들다.

「19세기 영국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영국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아프리카의 야생사자나 표범은 한 번 사람 고기를 먹게 되면 성격이 흉폭해지고 굶어죽을지언정 사람고기 이외의 것은 먹지 않으려고 한다. 수많은 관찰과 경험, 그리고 실험을 통해서 그 원인이 밝혀졌는데 사람고기가 다른 동물들에게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고기를 먹은 야생동물은 마약중독자처럼 사람 고기를 계속 먹지 않으면 금단증상 때문에 미쳐 날뛰는 것이다」

이 사례로도 인육이 맛이 있었기 때문인지, 단순히 인육속의 어떤 효소가 마약으로 작용해 맛에 관계없이 미치게 만든건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일단은 고기의 씹는 맛이 어떠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브라이언 마리나가 쓴 「카니발리즘」에는 런던에 온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한 얘기가 실려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인육은 돼지고기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한다. 또한 마오리족 중에는 50세 전후의 남자고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이나 여성의 고기가 가장 맛있고, 백인보다는 흑인의 고기가 더욱 맛있다고 한다. 앞에도 소개한 철경록을 봐도 어린아이와 여자의 고기는 부드러우며 남자와 노파의 고기는 질기고 딱딱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여자와 아이의 살이 남자나 늙은이에 비해 부드럽고 연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흑인의 살은 매우 부드럽고 탄력이 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고기가 먹을 때도 맛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인육은 과연 어떤 고기와 가장 비슷한 맛일까. 위에서 언급한 마오리족은 돼지와 비슷하다고 하고 있고 라틴아메리카지역 원주민들에게 인육은 긴 다리를 가진 돼지고기, 즉 Long Pig라고 불리웠으며 그 단어가 영어에 지금도 남아있기도 하지만 철경록에서는 전반적인 인육을 양각양이라는 말로 총칭하고 있다. 양각양이란 두발 달린 양이란 뜻인데 중국인들이 느낀 인육의 맛은 아무래도 양고기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과연 인육은 어느 쪽에 더 비슷할까. 프랑스 파리에서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그 사체를 먹은 죄로 구속된 잇세이 사가와는 형무소에서 “여자의 고기는 양보다 맛있다”고 한 나카노 미요코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한다, “양보다 맛있다라... 나는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그 맛을 상상했습니다. 양, 양, 양... 그리고 하루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행동에 옮겼습니다. 인육을, 당신은 양고기 맛과 닮은 건 아닌가하고 상상하셨죠. 그건 일정부분은 맞습니다. 입에 넣었을 때 화끈거릴 정도로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에 와서는 단순한 착각이었던 느낌도 듭니다. 당신이 한 말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그런 느낌을 들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인육에 대한 당신의 뜨거운 마음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그 때의 맛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다고 생각해 펜을 들었습니다. 어쨌든 간에, 그것은 강한 냄새도 맛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쇠고기에 가장 가까웠던 것 같긴 하지만, 이른바 고기의 맛 자체는 별로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가볍게 목을 넘어갔기 때문에 나는 마음속에서 어랏하고 외칠 정도였습니다“

동물이 가진 고기의 맛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 동물이 먹는 먹이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고기 맛에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초식동물의 고기는 씹는 맛이 좋으며 육식동물의 고기는 육식동물을 먹는 육식동물의 경우 씹히지도 않을 만큼 부드럽지만 냄새가 많이 나고, 초식동물을 먹는 육식동물의 고기는 상당히 질겨 잘 씹히지 않는다고 한다. 양과 사람의 식성은 명백히 다르고 아무래도 사람은 잡식성 식사를 하는 만큼 그 고기는 돼지고기나 혹은 개고기에 가까운 씹는 맛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실제로 유전과학쪽 뉴스를 보면 돼지의 유전자는 인간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실제 맛에 있어서도 돼지고기는 인간의 고기와 거의 유사한 맛을 내며 특히나 물에 삶는 방법으로 요리를 하게 되면 인간의 고기나 돼지의 고기나 맛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유전자가 99%이상 일치한다고 하는 원숭이의 고기는 인육과의 맛 차이가 매우 심하다고 한다. 아주 작은 구성성분의 차이가 인육보다 진한 향을 내게 하면서도 싱겁게 만들어 인육과 같은 맛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개고기도 인육과 다른데, 인육과 달리 고기 자체에 위산에서 너무 쉽게 분해가 되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인육과 가장 비슷한 고기는 돼지고기인 것으로 보이며 일설에는 중국에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이유는 과거에 많이 소비했던 인육과 제일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미각적면에 있어서는 짭짤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며 가끔씩 달짝지근하다는 경우가 보이기도 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도록 한다.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귀신이 있었는데 그 귀신에게는 아이가 100명 있었다. 부처님이 그 아이 중 막내를 숨겨놓으니 귀신이 슬피 울며 아이를 찾아다녔다. 부처님은 귀신에게 “백 명의 아이 중 하나를 잃은 너도 이렇게 슬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하겠느냐”

라고해서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멈추게 했지만 귀신은 옛날부터 죽 사람을 먹어온지라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석류를 주며 그것이 인육의 맛과 비슷하니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석류의 과육의 주요 성분은 당질(포도당. 과당)이 약 40%를 차지하며 유기산으로는 새콤한 맛을 내는 시트르산이 약 1.5% 들어있다. 수용성비타민(B1, B2, 나이아신)도 들어있으나 양은 적다. 단맛이 강한 감과와 신맛이 강한 산과로 나뉘며 전체적으로는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두산 엔싸이버 백과사전)

아무래도 사람의 혈액 속에 포함된 염분이 짭짤한 맛, 그 외 포함되어있는 다른 석류와 비슷한 영양소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구현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Marco Polo(Yule and Cordier; Vol. II, p. 225)에 의하면 복건지방의 주민은 병사한 사람의 고기를 잘 먹는다고 한다. 그들은 살해당한 인간의 고기를 항상 찾아다니며 인육의 맛이 매우 좋다(Excellent)면서 먹는다고 한다.

사실 맛이 있다 없다하는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단정내리기 힘들고 미식으로 식인을 한 사람들의 사례에서도 감상을 언급하는 경우까지는 적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결론을 내리긴 힘드나 어쨌든 인육은 최소한 ‘맛없지는 않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 같다.

(3) 약용으로서의 인육

그렇다면 약으로서의 효능은 어땠을까. 사람의 부위가 실제 약으로 쓰였던 사례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본다.

진장기는 본초습유에서 인육이 숙환에 지친 환자의 기력을 회복시키는데 특효가 있다고 쓰고 있다. 五代의 조사관은 술자리에서 간을 즐겨먹으면서 “사람의 간을 먹으면 용감해지니 나에게 맞설 자가 있을 수 있겠느냐” 는 말을 한다. 호르몬을 촉진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한슨씨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를 산으로 데려가서 죽이고 생간을 꺼냈다는 신문기사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은 사람의 정신을 돌아오게하기위해 斷指를 하여 피를 먹이거나 특히 부모님이 아프실 때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국을 끓여드리는 경우가 많다. 이 넓적다리는 처음에는 매독 치료를 위해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전반적인 불치병에 널리 쓰이게 된다.

중국에도 사람이 약용으로 사용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신당서, 新唐書 孝友傳」에는 부모의 질병을 고치기위해 자신의 살을 벤 효자 삼형제가 실려 있다. 이후「송사, 宋史」의孝義傳、列女傳、「원사,元史」의孝友傳、列女傳、「명사,明史」의孝義傳、列女傳에서는 의료의 목적으로 사람을 식용한 예증이 많이 나타난다.

「주운손은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넓적다리 살을 잘라 죽을 쑤어드리고 정성껏 치료해 병을 낫게 했다. 그 후에 어머니가 또 병이 걸렸는데 그 때는 아내 유씨가 대신 넓적다리 살을 잘라 약이(藥餌)를 만들어 드리자 병이 나았다. 상서에서는 그녀의 효행을 칭찬하여 효부시를 지었다」(송사, 宋史 列女傳)

「강호가 16세 때 아버지가 병이 들어 피를 토했다. 그는 넓적다리 살을 떼어 아버지에게 먹여 병을 낫게 했다. 몇 년 후 아버지가 발에 질병이 생겼다. 동생 신은 넓적다리 살을 잘라 연약(煉藥)을 만들어 발라 병을 낫게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버지가 피를 토하자 신이 옆구리 살을 잘라 약을 만들어 치료했더니 나았다고 한다. 그 후 아버지는 또 큰 병으로 쓰러졌다. 강호는 다시 옆구리 살을 잘랐다. 그 뒤에 신이 병이 났는데 동생 일앙이 울면서 말했다. “형은 옆구리 살을 잘라 아버지의 병을 치료했는데, 설마 내 살로 형의 병을 고치지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도끼로 손가락을 잘라 피와 약을 조합하여 신에게 먹였다.

일문 사형제, 6대 모두 부모에 효도했다 하여 표창을 받았다」(청사, 淸史 孝義專)

중국에서 약용으로 사람을 사용한 역사는 대단히 깊다. 진한시대의 「五十二 病方」에서 인체의 9군데 부위를 치료에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이후 한대의 「神農本草經等」, 그 외에 「周易 參同契․卷上」에서 추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남북조시대 도홍경의 「名醫別錄」은 8가지 인체활용법을 수록하고 있으며 수당시대에 「新修本草」, 「千金要方」에 이르게 되면 22가지까지 늘어난다. 이후 중국의 이시진이라는 사람은 「본초습유」의 내용을 정리하여 사람의 각 부분을 35개소로 구분, 약용으로 쓰는 법을 정리한 내용을 「본초강목」의 제 52권 人部편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 분류가 아주 상세해서 머리카락, 비듬, 귀지, 무릎때, 손톱, 이빨, 똥, 배내똥, 오줌, 상처의 딱지, 젖, 월경, 피, 정액, 침, 치석, 땀, 눈물, 수염, 음모, 뼈, 두개골, 피부, 양수, 탯줄, 쓸개, 인육, 미라에 이르고 있을 정도이다. 이는 중국의 인육소비가 단순한 식인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생각한다.

(4) 인육 소비의 부작용

그렇다면 과연 인육을 소비하는 행위에 수반되는 부작용은 없었을까.

인육에 관한 자료를 보다보면 한 번 인육을 먹으면 계속 먹고 싶어진다든지, 인육을 먹은 동물들이 이 후 인육만을 찾는 성향을 보인다든지 하는 중독적 성질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금기시 되는 인육을 먹는 쾌감이나 극도의 죄의식이 다시 인육을 찾게 한다는 정신적 면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 보다는 세로토닌의 작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극도의 스트레스 환경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고 한다. 이 물질은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을 합성하는 세포내의 소포체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스트레스로 인해 세로토닌이 다량 분비될 때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변형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고기를 PSE고기라고 한다. 이런 고기를 먹으면 신경전달 체계에도 장애가 나타나 자극에 대한 반응이 무뎌지고 질병에 대한 자각능력이 떨어질 수 있으며 쉽게 흥분하고 습관성이 강해져 정서적인 장애도 동반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살해당한 사람의 고기를 먹었을 경우에 위에 언급한 중독적 성질이 나타날 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두 번째로는 프리온 단백질의 위험이 있다. 프리온 단백질의 설명을 보자

「프리온은 사람과 동물에서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단백질이다. 우리 몸에는 프리온 단백질을 만들어내도록 명령하는 프리온 유전자가 있다. 이 단백질은 두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프리온은 우리 몸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들은 뇌 조직 따위와 같은 중추신경계에 주로 존재하고 있다. 정상 프리온은 130개의 아미노산이 결합해 꽈배기 모양의 나선 구조를 하고 있다. 핏속의 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51개 아미노산, 핏속에서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이 584개의 아미노산으로 각각 이루어져 있으므로 프리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단백질은 대개 알파나선 구조를 하고 있는데 특이한 조건에서는 병풍을 펴놓은 듯 한 형태로 바뀐다. 단백질에게 형태는 매우 중요하다. 형태가 바뀌면 성질이 바뀐다. 프리온도 나선구조에서 병풍구조(베타시트)로 바뀌면 성질이 표변한다.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인 프로테아제의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100도가 넘는 물에 넣고 아무리 오래 끓여도 형태와 성질이 바뀌지 않는다. 자외선이나 방사선을 쪼여도 자신의 모습과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리고 감염성까지 지녀 정상 프리온에 달라붙어 나선 구조를 병풍구조로 바꾸어버린다. 그 결과 뇌·신경조직의 프리온 구조가 서서히 파괴돼 결국에는 뇌 조직에 구멍이 숭숭 나 해면체를 연상케 할 정도가 된다.」(2004.1.6 한겨레)

중요한 것은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는 비슷한 포유류의 뇌를 생으로 먹게 되면 그 뇌 안에 있는 프리온단백질이 변형을 일으켜 그것을 먹은 사람 혹은 포유류의 뇌가 스펀지처럼 되어 미치는 병에 걸리게 되는데, 그 병은 가족성치사성신경증, 게르스트만 쉬트로이슬러 쟈인카증후군, 스크레피병, 전염성 해면양뇌증(TSE), 전달성밍크뇌증(TME), 광우병(BSE), 쿠루병등으로 나뉘며 이들을 총칭하여 프리온병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도 사람의 뼈와 뇌수 등을 먹음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쿠루병(Kuru disease)이다. 파푸아뉴기니의 동부 고원 지대 포어족이라는 종족이 있는데 이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죽으면 장례를 치룰 때 그 가족이 죽은 사람의 두개골에서 뇌를 맨손으로 꺼내 이를 수프로 만들어 먹는다. 쿠루병은 이 뇌 스프를 먹고 몇 해 혹은 몇 십해가 지난 후 발병하는데, 병에 걸리면 괴질에 걸려 온몸을 떨고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여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이면서 죽어간다. 고기 자체보다는 뇌를 먹을 때에 프리온 단백질이 변형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앞에 언급했던 황소의 난 때는 용마채라는 커다란 맷돌로 사람들을 뼈째로 갈아 병사들에게 식용으로 공급했었는데 이것을 먹은 병사들이 프리온병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맺음말

이따금씩 갓난아기로 국을 끓여 먹는 중국인의 사진이나 중국발 식인관련 소문이 돌곤 한다. 그 때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역시 짱깨는 무서운 놈들이라느니 하는 입방아가 찧어진다. 그렇지만 사실 사람을 먹는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돼지를 먹는 것이나 개고기를 먹는 것과 그렇게 많이 다를 것도 없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것은 인육을 대량으로 소비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인육은 사람에게 있어 완전식품이기는 하나 수많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여 부족한 영양소를 상호 보충해줄 수 있는 인간들에게 완전식품으로서의 인육은 사실 그리 큰 의미는 갖지 못한다. 돼지처럼 한 개체에서 얻을 수 있는 고기가 그리 많지도 않고 맛이 특출나게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식재료로서의 인육은 그다지 큰 메리트를 갖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어차피 식용을 위한 재료가 수 없이 개발되었고 그 양도 풍족하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굳이 인육을 먹어야 할 까닭은 없다. 다만 사람을 먹었다는 행위를 행위자체로 보지 않고 무조건 야만인으로 치부해 버리는 색안경은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사람이 행위하는데는 그에 따른 이유가 동반되며 사람이 사람을 먹었을 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개고기를 먹는데도 그 나름의 이유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노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도 가질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고자료

중국의 식인문화, 황문웅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 고광석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한스 아스케나시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철경록, 도종의

계륵편, 장작

본초강목 52권 人部, 이시진

支那人間に於ける食人肉の風習, 桑原隲藏,:「桑原隲藏全集 第二卷」岩波書店

支那人の食人肉風習, 桑原隲藏:「桑原隲藏全集 第一卷 東洋史説苑」岩波書店

人肉食の基礎知識, 池田 雅典

人體藥物에 關한 硏究 -本草綱目 人部를 中心으로- ,박선동

일본 Wikipedia - Cannibalism항목

Security Akademeia - 人肉항목

네이버 지식인
2012/12/11 00:28 2012/12/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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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에 썼던 거.


수없이 많은 일본인론(日本人論)중에서도 루스 베네틱트 여사의 「국화와 칼」과 이어령 교수의「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고전의 명저라고 불리우며 당당히 그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렇게 유명세를 가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아직까지「국화와 칼」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서평을 위한 두 책 중, 이미 읽어보아서 더 수월하게 평을 쓸 수 있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아니라 구태여「국화와 칼」을 선택한 것은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아직 읽지 못한 이 유명한 책에 접해보기 위함이 첫째이고,「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으면서 느꼈던 일본인, 일본사상에 대한 신선했던 충격을 동급의 명성을 지니고 있는「국화와 칼」에서도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 두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국화와 칼」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책의 내용이 일본인들 심리의 깊은곳을 꿰뚫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루스여사는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저자인 이어령 씨가 청년기까지의 시절을 일제치하에서 보냈고 일본인들과 함께 살며 일어를 쓰도록 강제되어있던 상황에서 좋든 싫든 일본인들의 문화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득할 수 있었던데 반해 루스여사는 간접사료들만을 인용하여 일본인론에 관한 책을 완성시켰다. 그렇게 쓰여진「국화와 칼」은 과연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국화와 칼」은 기본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통치방법에 대한 참고자료가 필요해진 미국 정부에서 기획하여 용역형식으로 만들어지게 된 책이지만 상당히 다양한 부분까지 손을 대고자 시도한 노력들이 엿보인다. 책의 1장은 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2장과 13장에서 미국의 통치에 있어 참고해야 할 사안들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나 나머지 장들은 그와는 관련 없이 정말 일본인론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 3장과 4장에서는 일본인들이 집단속에서 형성하는 위치에 대해서, 5, 6장은 온(恩)에 대해, 7, 8장은 기리(義理)에 대해, 9장은 정(情), 10장은 가치의 충돌, 11장은 일본인의 자기수양법, 12장은 어린아이들과 그에 관련되는 어른들의 의식세계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고 각 장이 그리 유기적이지는 않고 한 개의 장 속에서도 주제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어 이 장별(章別)구분은 그다지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언어구조와 실생활로부터 그들의 기저의식을 파악하고자 했던「축소지향의 일본인」과는 다르게 일본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적(現象的) 행동양식으로부터 기저의식을 파악하는 차별화된 구조를 가지고는 있으나 -「국화와 칼」이 먼저 출판되었기 때문에 이 표현은 적절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 이 책이 가진 유명세를 생각해보면 사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가장 첫 번째는 이 책의 시점이다.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씨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일본인론 집필자라는 신분이다. 그녀는 제 1장에서 이 약점에 대한 방어책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 전체에 걸쳐 그 약점이 완벽하게 극복되지는 못하고 있다. 루스는 미국에서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일본 관련 자료들의 풍부함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여러 가지 ‘일본의’ 특징들은 사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3장의 내용인 사회적 간격을 유지하는 모습이나 12장의 어린아이를 키우는 모습에 대한 서술에 이르면 동양인 독자로서는 ‘이것이 어찌하여 굳이 일본의 특징을 나타내는데에만 인용되어야 할 사례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루스 여사는 일본인이 가진 일본인만의 특색을 말하기 보다는 미국인이 보는 동양의 특성을 서술하면서 그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일본만의 특성이라 지레짐작 해 버리고 논리를 전개시켜간다. 서양인의 눈에서야 자신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양식이 신기하게 느껴졌겠지만 이런 선입관을 가지고 전개시킨 논리는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이었다.

두 번째는 참고했던 자료들의 문제이다. 일단은 선정기준이 문제된다. 물론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당시 출판되어 있었던 자료들에도 한계는 있었겠지만 루스여사는 주로 미국, 일본학자들의 자료만을 인용하고 있으며, 내용자체도 미국인과 일본인만을 비교하고 있다. 264p를 보자

『미국인은 ‘보는 나’를 자기 안에 있는 이성적 원리로 간주하고, 위기에 임해서도 빈틈없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행동하는 것을 자랑으로 하는데, 이에 반하여 일본인은 영혼의 삼매경에 몰입하여…….』

『일본인이 이 신조를 표명하고 있는 가장 극단적인 표현은, ‘죽은 셈치고’라는 표현으로……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서구어로 번역하면, 우선 ‘산 송장’ 이라고 하겠는데, 서구 어느나라의 언어에서도 이 ‘산 송장’이라는 말은 혐오의 표현이다…….』

이 표현만이 아니라 동양 어느 나라와의 비교도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은 책 도처에 널려있다. 그렇지만 루스여사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안경을 쓴 당사자가 렌즈의 처방을 알 수 없듯이 일본학자들의 자료에 치우치기보다는, 그리고 자신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시점을 가지고 있을 자국 학자들의 자료보다는 일본의 바로 옆에서 일본을 바라볼 수 있었던 한국이나 중국의 자료를 인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어야 했다고 본다. 그 결과 실지로「국화와 칼」은 동양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인의 특성과 일본인들만이 가진 일본인들의 특성을 뭉뚱그려 일본인들의 특성으로 서술해 버린 어정쩡한 책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 문제는 책 서술에 인용한 전체적인 자료들이 현대의 시점에서 참고로 하기에는 시기가 오래되었다는 점이다.「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시대가 지나도 크게 변화하지 않는 언어습관이나 전통의 문화양식들을 가지고 서술한 결과 내용의 영속성(永續性)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 반하여「국화와 칼」은 40~50년대 당시의 일본인들의 행동양태를 가지고 서술한 부분이 서술기반의 주를 이루고 있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수긍하기가 힘든 부분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199p에서는 이런 서술이 있다

『어떤 잡지에서 현대의 한 일본인은 말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결혼의 참다운 목적은, 아이를 낳고, 이에 의하여 집단의 생명을 존속시키는데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 이외의 목적은 어느 것이나, 결혼의 참다운 의미를 왜곡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일단 ‘어떤 잡지의 현대의 한 일본인’ 과 같은 모호한 인용대상을 선택한 점은 논외(論外)로 간주하더라도 현대 일본에서의 결혼목적이 아직도 이와 같을지 에는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272p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데,

『일본의 여자들은 아이를 많이 낳기를 바란다. 1930년대 전반의 평균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31.7명인데, 이것은 동부 유럽의 다산국과 비교해보더라도 높은 비율이다. 1940년도 미국의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17.6명이었다. 더구나 일본의 어머니는 일찍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세의 여자는 다른 연령의 여자에 비해 가장 많이 아이를 낳는다.』

현대 일본과는 전혀 상관없는 데이터가 되어버린 30년대의 데이터를 가지고 해석한 결론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료 선택에서의 많은 문제점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역시 부정확한 자료를 참고했다는 점일 것이다. 책에 따르면 47, 69, 187, 220, 226, 284p에서 모두 잘못된 자료를 인용하고 있거나 혹은 자료를 잘못 인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잘못된 자료로 전개한 논리가 과연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루스는 1장에서 늘어놓은 장황했던 변명이 결국 자신의 한계를 더욱 부각시키게 되는 함정에 걸리게 된다.

이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국화와 칼」이 일본인론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 해석의 탁월함 때문일 것이다. 1, 2, 13장을 제외한 각 장에서 루스는 외부인이 가지는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핵심에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카스트제도를 도입하여 일본인들이 가지는 적당한 위치를 갖고자하는 마음을 설명했던 3, 4장은 좀 무리한 감도 있지 않았나하고 생각했지만 타인에게 신세지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일본인의 심리를 설명한 5, 6장, 표면에 드러나는 명분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심리를 설명한 7, 8장은 저자가 일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수준이 매우 높았고 일본인에게 있어 선과 악의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10장, 껍질만 남고 사상이 사라진 일본불교를 설명하는 11장에서는 그 경지가 극에 달한 느낌을 준다. 물론 간접자료에 의존하는 한계로 인해 그 이론의 실 적용사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쉽고 또 개발되고 개발된 현재의 일본인론에 비교해보면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시대상과 연구를 위해 준비된 환경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국화와 칼」이 왜 고전의 명저로 손꼽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이 본 일본’을 서술하는 책이나 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말 보편적인 가치를 객관적으로 서술하여 어떤 사람에게도 읽힐 수 있을 만큼의 책은 사실 정말 찾기 힘들다.「국화와 칼」은「축소지향의 일본인」을 볼 때만큼의 만족감을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그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책을 볼 수 있다면 이 책 또한 나름의 장점이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장점은 이윽고 나의 일본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디딤돌로 승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국화와 칼」을 읽기로 선택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2012/10/27 21:50 2012/10/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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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천지인 방


[大任是人(대임시인)]

  孟子曰(맹자왈):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舜 發於畎畝之中(순 발어견묘지중): 순께서는 밭이랑 가운데서 기용되었고

  傅說 擧於版築之間(부열 거어판축지간): 부열은 토역일을 하는 공인들 속에서 기용되었으며

  膠鬲 擧於魚鹽之中(교격 거어어염지중): 교격은 생선과 소금을 파는 속에서 기용되었으며

  管夷吾 擧於士(관이오 거어사): 관이오(관중의 자가 이오이다)는 감옥에 갇히어 친구 포숙아의

                                            추천으로 기용되었고

  孫叔敖 擧於海(손숙오 거어해): 손숙오는 바닷가에서 숨어 지내다가 등용되었고

  百里奚 擧於市(백리해 거어시): 백리해는 시장바닥에서 기용되었다

 

  故(고): 그러므로

  天將降大任於是人也(천장강대임어시인야): 하늘이 장차 대임을

                                                            그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必先苦其心志(필선고기심지):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의 의지를 괴롭히고

  勞其筋骨(노기근골): 그 근육과 뼈를 지치게 만들고

  餓其體膚(아기체부): 그 신체와 피부를 즉 배를 굶주리게 하고

  空乏其身(공핍기신): 그 몸을 즉 생활을 가난하게 해서

  行拂亂其所爲(행불란기소위): 행하는 일이 하고자 하는 바와 같지 않게 만든다

  所以動心忍性(소이동심인성): 그것은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자기의 성질을 참게 하여

  曾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자기가 해내지 못하던 일을

                                          더욱 더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人恒過然後 能改(인항과연후 능개):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에야

                                                  고칠 수가 있고

  困於心 衡於慮而後 作(곤어심 형어려이후 작): 마음이 힘들고

                                                                이리저리 저울질하고 생각을 많이 한 후에야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徵於色發於聲而後喩(징어색발어성이후유): 얼굴빛과 목소리에 나타날 정도까지

                                                            괴로움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마음속에서부터 도리를 깨닫게 된다

  入則無法家拂士(입즉무법가불사): 안으로는 곧 법도를 지키는 자와 세가를 지키는 자와

                                                보필하는 선비가 없다면

  出則無敵國外患者(출즉무적국외환자): 밖으로는 곧 적국과 외환이 즉 어려움이 없다면

  國恒亡(국항망): 그런 가정과 나라는 언제든 망하게 된다

  然後(연후): 이러한 것들을 알고 난 뒤에야

  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지생어우환이사어안락야): 우환 속에서는 사는 것을 알게 되고

                                                                   안락 속에서는 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孟子(맹자)] (終)
2012/05/24 11:13 2012/05/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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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14:48 2012/02/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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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壬辰至于五六年間 賊不敢直突於兩湖者 以舟師之扼其路也,

今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則猶可爲也,

今若全廢舟師 是賊之所以爲幸而由湖右達於漢水

此臣之所恐也, 戰船雖寡

微臣不死則不敢侮我矣.


"임진년부터 5, 6년에 이르는 동안 적이 감히 양호(兩湖:충청과 전라) 지방에 쳐들어 오지 못한 것은 주사(舟師:수군)로 그 바닷길을 막아낸 때문이옵니다.

지금 신에게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으니,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방책이 있사옵니다.

이제 만일 주사를 모두 폐지하신다면 이는 적이 다행하게 여기는 바일 것이며, 호남 해안으로부터 한강까지 일격에 진격할 것인즉,

이는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전선이 비록 적다고 하더라도

미신(微臣:미미한 신하)이 죽지 아니한 즉, 적이 감히 우리를 가볍게 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 1597년(선조30) 9월, 이순신의 장계



심사와 숙려를 거듭한 끝에 가기로 결정한 길이라면,

몸이 부서지는 것은 더이상 상관하지 않을테다.
2011/09/25 23:23 2011/09/2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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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날 지진이랑 원자력발전소 사태가 일어난 이후 급가속이 붙은 건 사실이지만, 2011년 새해가 밝은 첫날부터 나는 스스로가 박사과정에 진학해야 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의 반년 이상 날 괴롭혀왔던 고민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 같다.


일요일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삶에 대한 답이 안나오기도 해서 바다나 보려고 카사이린카이 공원에 갔다.

방파제 위에 멀뚱히 앉아 바다를 한참 쳐다보고 있자니

"역시... 니가 답을 주지는 않는구나"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리고나서도 그냥 하릴없이 앉아 바다가 방파제를 철썩철썩 때리는 소리를 하염없이 듣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는 박사과정에 진학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다.

그럼 박사과정에 진학함으로써 해결되는 문제와 해결되지 않게 되는 문제.
혹은
답이 나오게 되는 문제와 답이 나오지 않게 되는 문제로 구분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머리가 안따라줘서 못하겠다는 것은 핑계이다. 그냥 내가 공부할 의욕이 없어서 안하고 있을 뿐이지 뭐 어려운거 하고 있는거 아니라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3년동안, 그리 썩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싫을것도 없는 과제를 붙들고 씨름하여 박사학위를 얻는 경험은 상당히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내 마음에 쏙 드는 과제가 아니라 할 지라도.

박사학위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가 대학원에 진학할 때 조차 이걸 하면 내가 박사가 된다는 사실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뿌요뿌요처럼 자기 마음대로 비대화하면서 역으로 나를 얽어매는 역효과가 일어난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마음먹고 걷어차버리면 되는 일이다. 몇번이고 말하지만 주위의 기대까지 다 고려한다 할 지라도 박사학위 그 자체는 나에게 있어 중요한게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과정은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음으로 인해 해결되는 것과 해결할 수 없게 되는 것.

답이 나오게 되는 것과 답이 나오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


지난 반년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위장을 쥐어뜯어가며 고심한 결과.

후자의 사례가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사능 문제는 분명 그 자체로 엄청나게 커다란 덩어리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개의 객체일 뿐인데 그 반대급부로 답이 안나오게 되어 버리는 것은 너무 많고 또 두번 다시 풀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어쨌든 누구라도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2011년에 하세가와 연구실에 진학할 수 있는 박사과정 후보가 나밖에 없다면,

문학학사와 공학학사를 동시에 가졌으면서 동경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딴 인재가 이온트랩의 기술을 한국에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당위적 이유가 존재한다면,

단순히 나 자신의 하고 싶음, 하기 싫음을 떠나서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일본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개체의 가능성이 동아줄을 붙들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어쨌든 존재한다면,


그리고,



나라는 개체의 존재가치가 이 세상에 있어 실은 그리 큰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책상위에 놓여진 박사학위 신청서류에 사인을 하고 송부하는 행위를 드디어 할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서 한 선택이라는 부분도 존재하니만큼 그 행위가 적극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행해질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내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


앞으로 3년간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그 카드를 신주단지처럼 떠받들고 모심으로써 다 헤쳐나갈 수 있다.


게다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때가서 때려치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맛있는 추어탕 파는 곳 하나 없는 이 팍팍한 도시 도쿄에서 어쨌든 나는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마음의 평안을 확보할 수 있다.

시대를 공유할 수 있는 단 한명의 동료조차 존재하지 않는 이 사막같은 도시 도쿄에서.


나는 또 내일을 살아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2011/07/04 23:13 2011/07/0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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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홈페이지를 만든 이후로 내가 넷상에서 소통을 하는데 쓰는 도구는 이메일, 블로그였다.

그런데 이번에 블로그 스킨을 바꾸면서 삽입한 트윗믹스와 JP트위터 플러그인에 낚여 만든 트위터가 소통의 도구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트위터 계정을 만든 동기는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하면 트윗믹스에 올라가 더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였었다. 어차피 내 트위터를 팔로우할 사람은 지인들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내 트윗계정에 자동 트윗되는걸로 사람들이 방문하게 되는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근데 막상 트윗 계정을 만들어 사용하고 보니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트윗믹스에 포스팅이 연계되는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안되는 경우도 있고, 되더라도 연결 트윗이 전혀 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던 것은 트윗이 핸드폰 문자의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하더라.

특히 일본사람들이랑 문자놀이를 많이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나는 핸드폰으로 일본어 문자 찍는게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기 때문에 키보드로 문자를 찍을 수 있는 트윗쪽으로 무게중심이 많이 이동이 되었다. 특수문자나 URL을 입력하는 것도 풀가위 신공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핸드폰을 쓰던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쾌적해 졌다.
또 한가지는 이메일을 부분적으로 대체하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1분 간격으로 갱신되는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사용하고 있어도 이메일은 짧은 대화를 연속적으로 교환하기에는 그리 적절한 툴이 아니다. 자료전달이나 정식대화 같은 부분은 당연히 이메일이 부동의 위엄을 자랑하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간단한 짧은 대화는 트위터가 대체해 가기 시작했다.


트위터는 부분적으로는 RSS리더기의 기능도 수행한다. 내가 처음 트위터 계정을 만든것도 이 푸시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는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을 연계한뒤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면 트위터에 그 글의 제목과 URL링크가 뜬다. 뭐 블로그가 아니고 웹사이트라도 관리자가 지속적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 되는 일이지만 하여튼 이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는 곳은 실질적으로 RSS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고 실지로 내가 구독하고 있는 RSS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은 RSS 구독 목록은 그대로 가져간 채 트위터에 추가해서 결과적으로 중복구독을 하고 있긴 한데 하는걸 봐서 구분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지금 생각은 며칠자 내용을 한번에 몰아서 봐도 되는 업데이트양이라면 계속 RSS로 구독하고 매일 한 건이 올라오는 피드의 경우 트위터로 보는게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매일아침 구글리더에 접속해서 몇 백건이 쌓인 글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기분은 들지 않기 때문에...

다만 현재는 문제 없지만 시간이 지나 팔로워수가 많아질 경우 타임라인에서 그 구독피드가 팍팍 밀려버린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따라서 현재는 맞팔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것도 좀 더 써보면서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이전에도 블로그를 하는 이유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지만
http://silphion.net/447

140자 제한에 자료 삽입이 URL첨부로 밖에는 불가능한 트위터로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는 없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하고싶은 말은 블로그로 가져가면서 그 말의 푸시는 트위터로,
RSS구독은 구글리더로 하면서 매일 한건 정도의 적은 갱신이 일어나는 피드는 트위터로,
자료교환이나 장문의 글은 썬더버드로 수행하지만 URL 전송이나 짧은 대화는 트위터로,
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200,000 Hit를 자축하며 돌아보는 Silphion System

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블로그가 어떻게 커질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임으로서 이 블로그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떠한 식으로 가져가고 싶다 하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


쓰다보니 트위터라는 재미있는 녀석이 나타나 지금의 내 소통방식이 변화했으니 앞으로도 재미있는 변화가 많이 나타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게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녀석이 나타날 때까지 나는 아무생각 없이 블로그와 RSS리더기와 이메일 클라이언트와 트위터를 가지고 놀아야겠다.
2011/01/15 20:02 2011/01/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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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ot.txt를 완전개방해버린 이후로 별 희한한 봇들이 다 와서 페이지를 크롤해 가는데 어제는 좀 희한한 놈이 들어왔다.

ICC-Crawler/2.0 (Mozilla-compatible; ; http://kc.nict.go.jp/project1/crawl.html)

이 놈인데 nict.co.jp면 정부기관 아니었나-_- 싶어서 웹페이지 들어가봤더니 지식처리그룹이라는데서 만든 봇인 모양이다.


...근데 Silphion System에는 일본어로 된 문서가 거의 없을텐데 왜 크롤을 하는거지...? 솔직히 연구개요를 읽어봐도 몰 하고 싶다는건지도 잘 모르겠음...
2011/01/06 01:04 2011/01/0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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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트래픽 초과가 나서 호스팅 업체를 변경하기로 했다. 최근 며칠간 접속이 안되었던 것은 호스팅을 옮기면서 네임서버가 바로 갱신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전에도 봇때문에 몇번 트래픽 초과가 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봇을 차단해버리는 걸로 해결을 보았지만 이제는 걔네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거 아니겠거니 싶어서 내가 트래픽 양을 올리기로 했다.

해외에는 값싸게 무제한 트래픽을 주는데가 많은데 그건 그거대로 엄청 느리다거나 하는 페널티가 있어서 그냥 한국 업체로 하기로 했다. 내가 보던데는 두 군데.

http://www.000webhost.com/

무료인데 여기는 파일용량에 제한이 있어서 마이그레이션이 안된다. 돈 내면 잘 될듯...

http://www.webhostingpad.com/

여기는 결재 직전에 취소하면 값을 깎아준다. 계정 살 사람은 꼭 시도하길 바란다.


하여튼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본 결과 미리내로 하기로 했다.
http://www.mireene.com/

원래는 2004년 2월부터 그냥 잘 써오던 카페24에서 트래픽 추가만 할려고 그랬는데 역시 선두업체라 그런지 가격이 좀 쎄더라. 그렇게까지 내면서 운영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 찾아본 곳이 비누넷인데
http://www.byus.net/index.html
여기는 PHP5를 지원 안한다고 해서 관뒀다. 호스팅 이전하면서 텍스트큐브도 판올림 할건데 1.8대 버전은 PHP5를 사용하기 때문에...
근데 나중에 찾아보니 비누넷도 신청하면 PHP5로 된다고 하더라;;
http://www.byus.net/jsb/read.php?table=notice&no=477&page=4
일단 미리내 1년 써보고 바꿔야겠다 싶으면 이쪽으로 갈 지도...

미리내는 하드 1기가에 하루트래픽이 2기가고 한달에 3번까지 리셋이 가능하다. 트래픽 3번 리셋은 비누넷에도 있는데 나는 이게 상당히 끌렸다. 왜냐면 실피옹 시스템은 트래픽이 항상 일정하게 나오는게 아니라 봇이 검색하는 주기가 있는데 그때만 트래픽이 박살나게 나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많은 트래픽을 확보해도 그걸 넘는 크롤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달에 1750원이니 뭐 비싸지도 않다.


그리고 이번에 호스팅을 옮기면서 미뤄오던 텍스트큐브도 1.7.8에서 1.8.5로 바꿨는데 속도차이가 상당하다. 소개페이지에 빨라졌다고 그래서 에이 뭐 얼마나 차이나겠어 했는데 느껴질 정도로 차이가 있다. 특히 해외에서 접속하는 나로서는 그 차이가 한결 더 크게 느껴진다. 포스팅 수가 많아지니 짜증이 날 정도로 느렸던 페이지 내 검색도 빨라졌고 댓글검색기능이 추가된 것도 상당히 기쁘다.

다만 계속 써오던 Poon카운터가 쓸 수 없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통계쪽 데이터베이스 이름이 달라져서 그걸 수정했는데 작동은 되지만 이상하게 스킨이 깨지는 문제가 나와서 그냥 디폴트 카운터로 바꿔버렸다.

또 한가지는 트윗창을 추가한 것이다. 요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보면 관련 트윗을 걸 수 있게 해놓은 곳이 가끔 있었는데 댓글 다는게 불편하지만 트윗 하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댓글 대신 리트윗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붙여봤다. 뭐 이걸 기회로 나도 트위터 함 시작해보고...
2010/12/25 23:25 2010/12/25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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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02년에 처음 일본에 갔을때 상당히 놀랐던 건 참치토막을 그냥 일반 슈퍼에서 팔고 있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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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이런게 5~6백엔 정도다. 부위나 참치 종류에 따라, 혹은 생이나 해동이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뭐 서민용 참치라면 대충 그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진열한 참치회는 길어야 이틀 이상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지난 참치는 저녁즈음 되면 타임세일이라고 해서 30%로 팔다가 그래도 안팔리면 50%까지 후려치는데 2002년 당시 거지생활하던 내가 가끔 하는 사치는 이렇게 반값으로 후려친 참치도막에 발포주 사가지고 와서 먹는 거였다.

참치도막 사다먹는 건 요즘도 마찬가지인데 이제는 돈이 없는게 아니라 가끔씩 구워먹기는 귀찮은데 기름기 땡기는 술안주가 필요할 때 즐기곤 한다. 참치 자체가 매일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음식은 아니더라고...

뭐 하여튼,

우리동네 근처에 있는 공판장같은 슈퍼에서는 주말마다 생 혼마구로를 썰어서 도막째 파는 이벤트를 하는데 어제는 혼마구로 오토로 한도막을 1700엔인가에 팔던데 혼자먹기는 양이 넘 많게 썰어놔서 메바치마구로 츄토로 생을 사다가 먹었는데 츄도로인데도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부서지는 감이 상당히 괜찮더라. 다음에는 혼마구로 오토로 생 사다먹어 봐야지...

그런데 먹다보니 메바치마구로가 뭔지 혼마구로가 뭔지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찾아보기로 했다.

1. 고급 마구로(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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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마구로, 혼마구로 라고하는게 이놈임(クロ(本)鮪). 우리나라 말로 참다랑어.

최고급품, 3m, 400kg까지 크기도 한다고 한다. 다른말로 [시비] 라 불리기도 하며 작은놈은 [메지] 라고도 한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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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 마구로, 혹은 인도마구로(ミナミ(インド)鮪). 우리말로 남방 참다랑어.

혼마구로 다음으로 고급품.

2. 식용 마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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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바치 마구로(目鉢鮪). 우리나라말로 눈다랑어.

눈이 크게 뜨여있어서 메바치라고 한다. 준고급품으로 포획량이 가장 많다고. 둥글둥글하게 생겨서 [다루마] 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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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하다 마구로(黄肌鮪). 우리말로 황다랑어.

회로도 쓰이지만 주로 통조림용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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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나가 (ビン長). 빈쵸라고도 하는데 우리말로는 날개다랑어.

기본 통조림용이지만 편의점이나 회전스시집 같은곳에서 들어가기도 한다는 모양.

3. 새치류. 중요하지 않으니 접어놓는다.

more..



이런 느낌으로 잡힌다고 한다.

마구로 회유해역 분포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메바치, 키하다(9~11月) 11  메바치(9~3月)
2  혼마구로
12  빈쵸(8~2月)
3  메바치(8~12月) 13  메바치, 키하다(10~12月)
4

 미나미마구로(3~9月)

14  미나미마구로(2~8月)
5  메바치, 키하다(12~4月) 15  메바치, 키하다(3~6月)
6  미나미마구로(7~10月) 16  메바치(7~10月)
7  메바치, 키하다(周年) 17  혼마구로
8  미나미마구로 18  메바치
9  미나미마구로 19  메바치(8~12月)
10  혼마구로    



그 다음에 봐야되는게 부위인데, 귀찮으니 걍 그림 링크로 때운다.
2010/10/24 15:13 2010/10/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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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인간(Human)


질문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질문2-꿈은 필요한가?

질문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질문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질문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질문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질문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질문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질문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질문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질문1-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질문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3-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질문4-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질문5-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질문6-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질문7-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질문8-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질문9-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질문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질문1-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질문2-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질문3-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질문4-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질문5-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질문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질문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질문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질문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질문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질문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질문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질문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질문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질문1-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질문2-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질문3-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질문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질문5-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질문6-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질문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질문8-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질문9-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질문10-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질문11-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질문12-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질문13-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질문14-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질문15-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질문16-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질문1-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

질문2-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질문3-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질문4-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질문5-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질문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질문7-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질문8-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질문10-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질문11-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2010/10/20 22:48 2010/10/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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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잘랄루딘 루미
2010/10/02 23:53 2010/10/0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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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면 안경맞추려고 했는데 서울역에 있는 항상 가던 안경집이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지 문을 닫아버렸다. 소송걸렸다는 얘기가 있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좋은 렌즈 싸게 넣어주던 데였는데 안타까울 뿐.

http://blog.naver.com/u21375

하여튼 이 매장을 운영하시던 분이 재고중 일부를 자기가 아는 곳에 넘겼다고 하는데 그게 일산에 있는 홍당무 안경원이다.

http://cafe.naver.com/eyesworld

위치는 여길 보면 나와있다.

http://blog.naver.com/sayu29/120106622318

근데 솔직히 너무 멀다. 안경하나 맞추러 화정역까지 가서 또 버스타고 가야 되는 듯... 이건 오버야.

그래서 다시 찾아봤다.

호야렌즈 30%세일하는 안경원이 고잔에 있더라. 솔직히 고잔도 멀긴 하지만...

http://eyewear.tistory.com/216


지금까진 케미 1.67 단면비구면 썼었는데 안경력도 오래되었고 하니 테랑 렌즈를 쌔끈한걸로 뽑아보자고 해서 호야 할인하는데를 찾아본건데 호야 1.67은 할인해서 17.5다... 테도 괜찮은걸로 가면 15만원 정도 하니 30만원이다.

문제는 이번에는 역반무테라고 반무테인데 프레임이 밑으로 들어간 걸로 가 볼려고 그랬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유행이 지난 프레임이라 한국에는 취급하는데가 거의 없더라. 있는데도 한장이나 두장 정도밖에 없었음.

그래가지고 에이 씨펄 어차피 돈 많이 주고 살건데 프레임이라도 좀 여러가지중에 골라서 해야겠다 싶어서 일본에서 맞추기로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일본은 그래도 확실히 역반무테가 많긴 하지만 프렌차이즈점에서는 다들 비슷비슷한 형태의 물건밖에 놓여있지 않더라.

http://www.meganeichiba.jp/frame/

http://www.alook.jp/

http://www.jins-jp.com/Glasses/Index/

http://www.zoff.co.jp/collection/

http://www.20000yen-doh.co.jp/megane/index.html

http://www.paris-miki.co.jp/products/glasses/


*참고로 일본에서는 역반무테를 림이 밑으로 들어가 있다고 해서 언더 림(アンダーリム) 이라고 하거나 혹은 나이롤이 아래가 아니라 위로 들어갔다고 그래서 역 나이롤 프레임(逆ナイロールフレーム) 이라고도 한다.


하여튼 그래가지고 언더 림으로 여러가지 검색해 봤는데 이쁜건 다들 2~3만엔대 브랜드 품이더라.
여기를 참조.

http://www.daigakudo.com/blog/tag/%E3%82%A2%E3%83%B3%E3%83%80%E3%83%BC%E3%83%AA%E3%83%A0
http://www.makotoweb.com/shop/frame/search.html$/frame_id/697/


*좀 맘에 들었던 거 리스트

이건 이쁘긴 한데 솔직히 부담스럽고...
http://item.rakuten.co.jp/eyeone/41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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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싼티는 나도 어떻게 소화해볼려고 하면 안될 건 없을 것 같지만...
http://item.rakuten.co.jp/auc-dis-mega/ey906-c1-r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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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참 마음에 드는데 일본에서조차 구할데가 없다... 글라스박스에서 35만 불렀던 물건.
http://www.makotoweb.com/main/2010/01/masaki_matsushimamf-1077col2_10500.html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반무테인데 위에 테가 들어가는건 싫고 그렇다고 렌즈랑 프레임이 떨어져있는것도 싫고 화려한 것도 싫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이걸로 결정했다.
http://www.eyeone.co.jp/shopdetail/100002000036/order/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자인은 마사키 마쯔시마가 잘 뽑는 것 같음.
http://masaki-matsushima.jp/


안경집중에는 이런곳도 있더라. 메이드를 안경모델로 쓰는 안경집.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특이한 안경을 잘 가져다 놓는다. 위치도 아키하바라...
http://blog.livedoor.jp/moe_megane/


렌즈는 토카이가 좋다는 것 같은데 다음에 살땐 토카이로 함 해볼까...
http://www.tokaiopt.jp/et/eyecare06.php



*부록 : 메가네이치바, alook 5% 할인권. 생협 가입자만 적용.
http://tokyogak.coop/index.php?cID=127
2010/09/30 14:27 2010/09/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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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결혼은 전통혼례로 할 생각이었는데 성대 졸업생은 부페를 천원 깎아준다는 참새눈물만큼 고마운 혜택때문에 유림회관으로 결정... 은 뻥이고 그냥 여기가 만만해서.

http://www.urimwedding.co.kr/
2010/04/15 00:57 2010/04/1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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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퍼러 기록에 이성익 교수 라는 검색어가 떴는데 평소처럼 아무생각없이 이성익 교수님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 들어온건 줄 알았는데

심심해서 아고라에 놀러갔더니 다음 글이 있더라

어 느 '양심 있는 교수'의 죽음을 보며



...50대 초전도체연구를 하는 교수?


아무래도 이상해서 기사를 주루륵 검색해봤다.

[단독] 국내 초전도체 최고 권위자 투신 자살


국내 초전도체 권위자 자살…왜?


유명 물리학 교수 아파트 화단서 숨진 채 발견


2008년 포항공대에서 모교인 서강대로 옮긴 교수, 고온초전도체 MgB2결정을 성장시킨, 초전도체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대가로 손꼽히는 사람은 이성익 교수님밖에 없다...


언론에서는 쉬쉬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BRIC에서는 그냥 붙여넣기를 해 버렸다.

http://www.bric.postech.ac.kr/myboard/read.php?id=49534&Page=1&Board=sori&FindIt=&FindText=&divpage=



내가 이 길을 들어설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신 분. 비록 인터넷으로 다운로드받은 모니터 저 편의 화상일지언정 진정한 고등교육과정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뜨거운 열정으로 알려주신 분.

이분의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인생항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신 분.


그런 분께서 자살을 택하셨다.


오늘은 술을 먹어야 한다.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2010/02/25 14:10 2010/02/2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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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이메일 클라이언트로 윈도우 XP에 기본으로 탑재되어있는 아웃룩 익스프레스를 쓰고 있었다. 어차피 일정은 팜으로 관리하고 있었기에 굳이 일정관리기능까지 들어가서 비대해진 오피스 아웃룩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웃룩 익스프레스를 트레이로 보내버리는 HideOE 정도는 잘 깔아서 쓰고 있었지...


근데 이번에 들어간 연구실 컴퓨터가 비스타라서 아웃룩 익스프레스가 없고 윈도우메일이라는 넘이 들어있더라. 기본적으로는 아웃룩 익스프레스 엔진을 사용한 넘이라 임포트 되길래 집에서는 아웃룩 익스프레스 쓰면 호환되겠다 생각해서 그걸로 임포트 했더니

얼마전에 집 컴퓨터를 윈도우7 으로 바꿨더니 이번엔 윈도우메일조차 안들어있고 아예 웹계정으로 연결되게 바뀌어져 있어서 어쩔수 없이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뭐가 됐든간에 설치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는 썬더버드3을 선택하긴 했지만 오피스 아웃룩을 쓸까 썬더버드를 쓸까하다가 썬더버드로 온건 다음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 크다.

아웃룩을 회사에서 사용하면 안되는 7가지 이유



뭐 하여튼, 일단 써보니 가장 맘에 드는게 검색기능이다. 익스프레스에서 바로 넘어온 터라 아웃룩 검색기능도 이정도 가능하긴 할것같긴 하지만 어쨌든 썬더버드3의 검색기능은 만족스럽다. 속도도 물론 만족스럽다. 익스플로러를 쓰다가 파이어폭스로 넘어온 느낌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다만 윈도우메일이 아주 개같은 형태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어서 임포트는 쫌 애먹었다.

ImportExportTools (MboxImport enhanced)


이걸 쓰니 어찌어찌 완벽하게 다 옮길수는 있었다. 플러그인도 여러가지 많은 모양인데 뭐 개인적으로는 트레이로 보내버리는 거나 하나 있으면 충분할 듯...
2010/01/15 15:45 2010/01/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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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A 한국능률협회에서 댓글을 달면 연탄 한장을 배달해주는 이벤트를 하고있다.
http://www.kma.or.kr/event/love_briquet_board_20091129.htm

삼성생명에서 소망램프라는 기부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클릭당 1,000원을 후원해준다고 한다. 네 개의 사연들이 있는데 모두 클릭해주자. 사연은 정기적으로 갱신된다.
http://www.samsunglife.com/company/service/lifetime/service_lamp_03V.jsp


2008/10/03 09:56
1. 싸이월드는 로그아웃 할 때마다 미아찾기 캠페인 화면으로 이동한다. 가끔씩 눈살이 찌푸려지는 댓글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의도는 훌륭하다.

그리고 나도 세계를 향해 발신할 수 있는 블로그라는 발신기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런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미아찾기 배너를 달기로 했다. 과연 이 작은 움직임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백배천배 낫다고 본다. 얼마나 카운트가 올라갔는가만 세고 있었던 구글 애드센스를 붙여놓았던 시절보다 마음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배너는 우리나라에 미아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 제거된다.


테터툴즈용 미아찾기 플러그인은 아래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http://retro.tattertools.com/ko/bbs/view.php?id=plugi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finding&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91

텍스트큐브용 미아찾기 플러그인은 아래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http://notice.textcube.org/ko/12


2. 블로그의 왼쪽 아래 사이드바를 보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밑에 두 개의 배너가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전까지는 세 개였는데 하나가 줄어들었다. 이 배너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블로그라는 매체가 미력이나마 보탤 수 있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첫번째는 나눔배너라고 해서 현재 배너 우상단에 보면 2337(숫자는 바뀔 수 있다)이라는 숫자가 있는데 이것은 블로그에 이 배너를 달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의미한다. 나눔배너 2.0 이라는 이 배너는 DONUS CAMP라는 단체에서 후원하는데 한 사람이 배너를 달 때마다 2000원의 기금을 공부방 아이들에게 후원한다. 자세한 설명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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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배너 2.0은 블로그에서의 나눔과 소통을 위한 배너로
자신의 블로그에 달고 있으면
매달 다른 프로그램으로 공부방 아이들에게 1000원씩 기부됩니다.

여기에 매칭펀드 방식으로 1000원이 더해져
매달 총 2000원이 도너스캠프 공부방 아이들에게 기부되지요.
프로그램은 2008년 말까지 지속됩니다.

나눔배너 2.0의 자세한 내용과 다는 방법, 소스 받기는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나눔배너 2.0을 달면 매달 공부방 아이들이 행복해져요
http://donorscamp.tistory.com/entry/donationbann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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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다음에 있는 배너에는 노란 바탕에 Hunger Site 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한끼의 식사를

이 곳을 클릭해서 들어가면

Click Here to Give - it's FREE!

라는 버튼과 만나게 되는데 이 버튼을 꾹 눌러주자. 버튼을 클릭할 때마다 이 사이트의 스폰서들이 어려운 나라에 한 컵의 음식을 보내게 된다. 하루에 한 번 참여할 수 있으니 매일매일 참여하자. 10초밖에 안걸린다.


4. 원래 그 밑에는 미얀마 배너라고 한개 배너가 더 있어서, 배너를 달면 풀무원에서 한 명당 2000원씩 카운트해 얼마전에 있었던 미얀마 태풍피해에 대한 원조금을 보내기로 했었다. 현재는 이벤트가 종료되었는데 생각보다 배너를 단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홍보가 부족한 탓이었을까. 아래 사이트에서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http://blog.pulmuone.com/116


사실 원조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돈이든 소중하고 큰 돈이겠지만 어쨌든 1년에 수백억, 아니,  몇 조를 굴리든 대기업들에게 있어서 몇 백만원, 몇 천만원이란 그렇게 빼 내기 어려운 항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있다. 그 돈이 하찮다는 얘기가 아니다. 조금만 더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 만으로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다. 대기업에서 이런 이벤트를 더욱 더 많이 벌여서 내 블로그가 배너로 점철된 페이지가 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09/12/05 14:47 2009/12/0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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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시작해 온 홈페이지 짓거리도 벌써 10년차에 들어서고 보면 사실 특별한 감상도 들지 않는다, 어차피 이전 포스팅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었기도 하고.

사실 오늘 포스팅을 한 건 앞으로의 Silphion System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어차피 기본골자는 그때그때 내가 꼴린 정보나 감상을 올리는 것 뿐이지만 어쨌든 좀 구체적인 노선을 정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블로그를 하면서 느끼는 건, 이제 카운터 수라는 건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거다. 카운터를 늘릴려면 자극적인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거나 mp3, 혹은 애니메이션 동영상이나 자막파일, 소프트웨어 크랙을 올리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또한 카운팅 자체도 과거에 비교하면 봇등으로 인한 허수가 많아 숫자 그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게 되었다.

무슨 소리냐? 카운터를 올리기 위해 포스팅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다.


사실은 게임이나 애니 최신정보를 올려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관둬버렸다. 어차피 그런 정보를 제공하는 포탈이 쎄고 쎘는데 내가 굳이 그런 행위를 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내 홈페이지는 아무래도 내가 필요한 정보, 특히 종이로 기록하기 힘든 URL이나 이미지를 링크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1회성 기사를 일일이 여기다 다시 갖다붙이는 것도 귀찮고 또 그건 그거대로 시간낭비, 용량낭비로 이어진다. 그런 건 그냥 구글 리더에서 읽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다시말해 나는 내가 필요한데 정리가 안되어 있는 데이터를 구축하기위한 데이터베이스로서의 성격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게 뭔가? 너무 내가 올리고 싶은 정보만 골라 블로그를 꾸미는 것 아닌가? 보러오는 사람이 읽고싶은 정보를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내가 모든 정보를 올려야 될 필요는 없다. 나의 부족한 조각은 다른 블로그에서 반드시 메꿔주도록 이 네트는 구성되어 있다. 내가 올리고 싶은 정보만을 올리는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완벽한 웹의 조각이 완성되는 것이므로 나는 그저 내 맘대로 하면 된다.


카운터가 한참 올라가고 있을 때는 구글 애드센스를 써서 돈 좀 벌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때려치웠다. 막상 해보니 블로그로 돈을 벌려면 일단 포스팅이 많아야 한다. 그것도 그냥 어디서 아무렇게나 스크랩 해 온 정보가 아니라 자기가 꼼꼼하게 가공해 낸 '질 좋은 ' 포스팅이 많아야 한다.
나는 블로그에 그정도로 시간을 많이 쓰진 않는다. 잘 보면 주인장의 난잡한 감상글이나 어쩌구저쩌구하는 잡설이 별로 없는게 이 블로그의 특징이다. 대부분 링크로 다 때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귀찮아서 감상없이 링크만 붙이는 것도 있긴한데 그것보다는 '블로그' 라는 수단에 그리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오프라인 일기장에는 한시간 이상 들여서 글을 쓰는 일이 잦으니까. 그렇게 쓰다가 다른 사람에게도 읽게하고 싶다 하는 글이 여기에 올라오는거지 모니터 보고 몇시간이고 앉아서 길쭉한 포스팅을 붙이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하여튼 내 스타일로는 블로깅으로 돈을 벌 순 없다.

게다가 나는 이 블로그로 돈을 벌고싶지도 않다. 넷상에서이긴 하지만 세상에 대해 내 목소리를 커다랗게 내어 주는 단 하나의 확성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녀석이 작동하는 댓가로 돈을 받는다는 사실은 그 행위가 돈으로 평가되는 것 같아 싫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하고 생각해서 하고 있는것이 아래 활동이다.

나의 블로그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블로그 리퍼러기록을 보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보는 글은 epsxe랑 ds공략, 논문양식에 관한 글인데, 내 생각에 Silphion System에서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 되는 건 아래 글이라고 생각한다.
http://silphion.net/273
http://silphion.net/258



사실 이 블로그는 아직 중간점검을 할 단계는 아니다. 지금은 그냥 관성으로 붙은 속도를 가지고 그냥 계속 달리는 시기이다. 특별히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점하나 찍어놓는 건 어떻겠나 싶어 그냥 써 봤다. 위에서 어떻게 할것이다는 노선을 천명하긴 했지만 이런건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하다가 보면 마음이 바뀔수도 있고 아예 다른식으로 갈 수도 있다. 생각하고 있는것도 있긴 하지만 그건 또 다른 기회에.
2009/05/30 13:03 2009/05/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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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토요일은 대학동기 류진경의 결혼식으로 아침부터 강남 고속터미널에 갔다.
그리고 황망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심지어는 그 방법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형태의 자살이었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혀 정말이냐고 되묻는 한정된 반응만을 언제까지고 보일 수 밖에는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통령직을 벗어던지고 봉하마을로 내려와 '야~ 기분좋~다!' 고 외쳤던 사람이 과연 자신에게 '대통령님'이라는 거창한 칭호가 붙는 것을 기꺼워 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그를 높이지 않는다면 도데체 이 나라에서 누굴 높여야 한단 말인가?

노무현'님'이라는 호칭이라면 그는 동의할까?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당신의 호칭에 최소한의 존칭이라도 붙이지 않으면 머리가 이상해져 버릴 정도로 당신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땅바닥에 늘러붙은 시커먼 껌딱지들에조차 선생님, 교수님, 박사님 하는 존칭을 붙이길 전혀 꺼려하지 않는 정신적 미숙아 혹은 정신적 파산자들이 풍기는 썩은내가 진동하는 이 세상에서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존경을 표하지 않는다면 그 악취에 취해 금방이라도 내가 졸도해 버릴 것 같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님을 존경했고 그를 시대의 어르신이었다 평가하고 있었기에 그를 잃은 내 세계는 지금 격심한 충격에 빠져있다.
2주일 전.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엄마의 죽음조차 아직 삼키지도 못한 상황에서 장영희 서강대교수님과 노무현 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죽음까지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너무 불쌍하다.

어쨌든 '그들'이 받들어 모시는 전지전능한 의미로서의 신이라는 게 없다는 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이번 일은 그 공상(空想)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전두환도 살아있고 노태우도 살아있고 강만수도 살아있고 전여옥도 살아있고 부시도 살아있고 쥐박이도 살아있는데
노무현님은 자살을 '강요'당했고 도저히 맞설 수조차 없는 끝없이 거대한 절망과 암흑에 밀린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여기저기 타살설이 떠돌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살을 '강요'당했을지언정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은 했으리라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감옥에 갇혀서 자기가 만들어 낸 모든 것들을 부정당하고, 자기가 사랑한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자기가 믿었던 가치가 산산조각나며, 그 상황이 시간이 경과되어갈 수록 더욱 악화(惡化)될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현상과 직면한 자존심 강한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라는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의 자살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이해한다.

인간이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방위(方位)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좁아진 그에게,
방아쇠는 그리 큰 것이 아니어도 그 발동(發動)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쥐박이가 얼마나 미웠을까.

취임하자마자 한 짓거리가 정부조직 개편 - 말이 개편이지 사실상 조직을 통째로 들어내고 아예 다른 걸 갖다 심어버린 저 무식한 적출(摘出)과 이식(移植). 그나마도 노무신(神)의 흔적을 지우려고 그런 짓거리를 행해놓고는 잘 돌아가지 않으니까 나중에 은근슬쩍 원래의 조직을 복귀시키는 멍청하고도 한치앞도 보지못하는 쥐의 행각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졌을까.

참여정부동안 잘 끌어와서 이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될 정도로 진전시켜 놓은 수많은 대형사업들과 계약들을 '노무신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취소시키고 걸레짝을 만드는 짓거리를 보면서 얼마나 통탄(痛嘆)을 했을까.

그렇게도 욕을 먹고 누더기가 될지언정 통과시켜 최소한의 안전장치(安全裝置)로서 기능하길 바랐던 부동산을 위시(爲始)한 수많은 정책들이 정권을 넘겨주자마자 뿌리째 뽑혀나가고 상상도 못할만치 극악(極惡)한 것들로 바뀌는 -심지어 자신이 아래에 두고 쓰던 관료들조차 그 짓에 합세하여 개지랄떠는 현상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았을까.

썩은내가 나는 고인물같이 되어버린 정부조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겠다 싶어 만든 과거사, 5.18, 인권위원회 등의 수많은 위원회들이 폐지되고, 축소되어 결국에는 불구(不具)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얼마나 눈물을 속으로 삼켰을까.

쥐박이가 '전직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능청떠는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하고 그래도 지켜본 자신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고 난도질하고 짓밟고 사지를 찢어버릴듯이 들어덤비는 저 씨발놈이 얼마나 미웠을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행한 기록물반출에 거품물고 지랄떨면서도 어쨌든 지는 항상 뒤에 숨어서 유감이라며 찍찍거리는 저 쥐새끼가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


그런 쥐박이의 미친 행위를 보좌하고 수행하는 행위를 마치 자발적 노예처럼 실행했던, 혹은 해야 했던 청와대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했을까.

그 과정의 중심에서 쥐박이에겐 유리하게, 자신에게는 한없이 불리하도록 담론(談論)의 확대재생산에 앞장선 조중동을 위시한, 무가지보다 더욱 그 가치가 떨어지는 쓰레기 신문들과 하루종일 홈쇼핑전파만 주구장창 쏘아대는 케이블채널보다도 저급한 KBS, SBS들 방송국의 견고한 동맹에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꼈을까.

그런 정권의 나팔수들이 매초(每秒)마다 불어대는 독기서린 나팔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 사람이 그랬을리 없다하고 믿던 보좌관이, 의원이, 친구가, 형님이, 그리고 아내마저 결백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했을 때 얼마나 비탄해했을까.

그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마치 일제시대 순사가 독립군을 고문하듯이 자기가 사랑하고 믿음을 준 사람들을 더럽고 치사하고 비열하고 치졸하며 또한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모습을 그 눈에 담고 그 귀로 들어야 하는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자신이 혼을 다해 지난 5년동안 쏟아넣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데체 무엇 하나 성장한 데가 없는 저 국민이라는 이름의 미숙아들이 한데 입을모아 조중동이 만들어낸 공격논리를 그대로 받아 증폭시켜 귀청이 떨어져 나갈듯한 소음으로 한반도를 들썩이는 작태(作態)에 얼마나 마음으로부터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고 또 눈물을 흘렸을까.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의 불씨를 밝힌 상징적 인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면,
계급문화가 아예 그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는 거대한 병영국가 대한민국에서 권위주의와 뒤틀린 계급사회의 부조리함을 타파하려고 한 인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말할 수 밖에는 없다.

권위라는 건 걷어찰 것 밖에 그 효용성이 없는거라는 나의 소신을 대한민국 대통령의 위치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겼고 또한 그 소신을, 수 많은 풍파(風波)를 맞아가며 온 몸을 던져 관철하고 지켜냈던 사람.

그래서 나는 노무현님을 존경한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님을 위해 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권위주의와 계급주의의 망령을 걷어내고자 했던 그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노력은 극한까지 늘어난 스프링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운동과 완벽하게 동일한 속도로 무위(無爲)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근조(謹弔) 라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 붙여야 할 말이 아니다. 서거(逝去)라는 말 조차 권위를 걷어차던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뿐이다.

그는 죽지조차 않았다.
이다지도 그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전국 분향소에 끝없이 긴 줄을 늘어뜨리고 있다. 언젠가는 하나둘씩 그를 잊어가는 사람들도 나타나겠지만 그의 유지를 받들어 대한민국에서 친일파를 청소하고 권위주의를 걷어차 버릴 사람도 또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죽은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또한 나의 마음속에
언제까지고 살아있을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그의 얘기를 해 준 나의 손자가 죽을 때까지.
그 손자의 손자가 또한 그 명을 다할 때까지.

관 앞에 서서 눈물 짤 필요는 없다.
그는 거기에 있지 않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내 마음속에 살아 숨쉴 수 있다면 근조라는 단어를 꺼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근조를 붙여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친일파 쥐박이와 한나라당,그리고 그의 수족들. 또한 그들에 동조하는 우둔한 국민들이 스스로를 무서운 속도로 침식하고 갉아먹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이야말로 근조해야 할 대상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격(格)이 그 기능을 멈춘지는 벌써 1년도 2개월이나 지났지만 자신을 회복시켜주려는 의사(醫師
)를 목졸라 죽임으로 인해 실질적 뇌사판정을 받아버린 대한민국의 영정(影幀)에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검은 리본을 매달 수 밖에는 없다.



謹弔 大韓民國

2009/05/25 21:23 2009/05/2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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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지는 않겠다. 좀 더 정확한 정보가 모인 후에 정리하려고 한다.


지금은 그저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슬퍼할 뿐이다...

2009/05/23 16:20 2009/05/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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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당히 싫어하는것 중의 하나가 RT들이 교내에서 큰소리로 거수경례하고 그걸 거만하게 받는 꼬락서니를 보는거다.

어차피 훈련생들 주제에 무슨 거기에 서열이 존재한다고 아랫놈들은 '우리도 후배받으면 이렇게 시켜야지' 하면서 큰소리로 거수경례붙이고 윗놈들은 아직 소위 계급장도 못 받은 것들이 손바닥만 까닥거리면서 지나가는 걸 보고 있지면 아주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다.

강부장의 설명에 의하면 어쨌든 RT훈련생의 기간도 호봉으로 친다고 하니 굳이 서열이 존재한다고 논리를 방어하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내가 까고싶은 건 그 치들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를 보이는거다. 어차피 그 치들이 그러는거는 이미 전통으로 굳어져 버려서 누가 깐다고 경례를 하고 안하고의 영역을 이미 넘어버린 상태이니 내가 무슨 행동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역겹게 여기는 나로서는 아직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저런 구역질나는 짓거리를 좋다고 하고 있는걸 보고 있으려니 뱃속으로부터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권위는 계급장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진 지혜와 오오라로부터 생긴다. 그 오오라가 상대방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을 때 권위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래서 내가 선배라 불리는 걸 싫어하는거기도 하다.

대학에서 붙는 선배라는 호칭을 가진 것들이 그들의 후배에 비해 나은 점은 학교 주변 식당은 어디가 맛있는가 수준의 지식을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들은 선배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이전에 최소 5년이상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나이를 보고 선후배를 결정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고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적어도 관성에 의한 경험만으로 타자(他者)의 위에 서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다. 심지어 5년조차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사람까지 존재한다.



저 높이 솟은 커다란 건물이 내뿜는 위엄에,

도저히 납득할 수 조차 없는 갖다붙인 의미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대학교 마크가 가지고 있는 위엄에,

선배라는 작자, 상관이라는 작자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지만 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위엄에,

내가 알고있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알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렇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취득할 수 있는 지식의 피로(披露)로부터 느껴지는 위엄에,

관(官), 실(室), 청(廳) 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근거없는 위엄에,

스스로가 사물을 대할 때 자발적(自發的)으로 발동(發動)하는, 의미없는 외경심(畏敬心)에,


저항하라, 납득하지말고 무릎 꿇지도 마라. 있는 힘껏 걷어 차 버려라.
2009/05/17 23:43 2009/05/17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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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회고발 프로그램은 그 효과를 극적으로 상승시키기 위하여 상당히 자극적인 소재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고 또 내용적인 면에서는 시청자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부적인 팩트는 쳐 내는 경우가 많다. 아래 소개하는 것들도 모두 그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집중하고 영상을 볼 수 있다면 편집자가 왜 이런 사례를 선택한 것일까, 삭제된 디테일은 어떤 것일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상들에 팩트를 근본으로부터 비틀어버리는 심각한 왜곡은 전혀 없다고 단정하며 제공되는 영상 그 자체만으로 판단해도 어디에 내 놓아도 밀리지 않을 만큼 훌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이 결론은 나의 배경지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내려진 것이며 당신이 나의 그것들을 신뢰할 수 있다면 아래 소개하는 영상들이 하는 얘기도 동일한 수준으로 신뢰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직접 시청한 영상만을 소개하며 계속 업데이트 할 예정이고 당연한 얘기지만 영상에 관한 추천도 환영한다.


*식코  (Sicko, 2007) 
http://migame.tv/section/ucc/view.asp?msg=150380&bd=27
http://migame.tv/section/ucc/view.asp?msg=150381&bd=27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 2006) 
http://andu.hanafos.com/pub/enjoy.asp?conkey=405692
http://andu.hanafos.com/pub/enjoy.asp?conkey=405698

*시대정신  (Zeitgeist: The Movie, 2007)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1825476&q=%BD%C3%B4%EB%C1%A4%BD%C5

*시대정신 2 (Zeitgeist II Addendum 2008)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2012431&q=%BD%C3%B4%EB%C1%A4%BD%C5

*PD수첩
http://www.imbc.com/broad/tv/culture/pd/vod/index.html

*이제는 말할 수 있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cantell/vod/index.html

링크가 삭제되었을 땐 알려주기 바란다. 링크가 작동하는 새로운 URL로 갱신하겠다.

2009/01/06 17:49 2009/01/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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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촛불 속 어딘가에 나도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되어 걸어나가는 모습을 나는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



12월 31일날 종각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쥐잡으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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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18:36 2008/12/2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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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일째 트래픽초과로 이 메시지가 뜨고있다. 사실 나는 뭐 홈페이지에 올라온거 긁어가고 뭐 맘대로 수정하고 뭐 이러는건 별로 상관 안하는데 트래픽이 초과되면 내가 홈피에 못들어가서 상당히 불편하다. 짜증나서 텍큐도 다 밀고 처음부터 다시 클린인스톨하고 로봇도 다 막고 이랬는데 또 트래픽 초과 나오면 방법이 없다...=_=;;

하여튼 이놈의 로봇들이 문제다. 맨날 긁어가기만 하니까 실 사용자가 페이지를 못보니... 이거 뭐 특단의 조치가 없나 찾아봐야 될 것 같다...
2008/12/08 00:38 2008/12/08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