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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병원에서 더이상 엄마(난 아직도 엄마, 아빠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아버지, 어머니라 부를 때 당신들께서 느낄 괴리감을 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에게 주사제를 쓸 수 없다(=써도 효용이 없다) 라는 판정을 받고 경구 투여식 항암제를 받아왔다. 경구투여제는 주사제보다 약하다고 하니 병원에서는 이제 어느정도 손을 놨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 등등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난 병원이란 존재를 신뢰하지도 않고 실제로 병원이 암을 고치지도 못하므로 더 이상 병원으로부터 뭔가 기대하지는 말야야겠다고 가족들끼리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물론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하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이 단계에 오면 죽는다는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니 울 엄마가 암때문에 죽는다고 해도 그 사실 자체는 그리 슬퍼할 것이 아닐 것이다. 50년이상 살아오면서 세상에 즐길 것이 절에 다니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이 차라리 더 슬프다면 슬픈일이 아닐까.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오늘 탤런트 안재환씨의 자살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지만(고인에게는 명복을 빌 따름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내가 그리도 세상살이에 둔감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다.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스스로의 세계를 형성하고 난 이후로 주변에서 두 번의 죽음을 경험했다. 한 번은 군대에서 통제관 자살사건, 한 번은 양호할아버지 돌아가신 거.
아니다, 세 번이다. 류선생님 돌아가신것까지.

그렇지만 그 세 번의 기회에서 나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아직 실감하지 못했다. 임종의 때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건 아마도 공유했던 것이 그만큼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사람은 육체가 죽을 때 죽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억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않게 됐을 때 죽는다. 그가 나에대해 공유하고 기억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나는 더 빨리 죽어간다. 통제관과 양호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육체를 잃기 전부터 그 두 분은 이미 내 속에서는 죽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류선생님의 경우는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고 있으면 죽는게 아니라는 것을 강렬하게 알려주셨다.


하지만 그런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보다는,

좀 더 나와 가까운 사람이 되고보면 어떨까. 그 때도 한가롭게 '공유하고 있는 것이 없을 때야말로 사람은 죽는것이다' 라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을 수 있을까.

그래, 그런건 사실 아무래도 좋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어쨌든 슬픈일이다. 주변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니고 그것은 슬프다는 감정으로 -일반적으로- 이어진다. 아마 나는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 아직 죽기로 확정난 것도 아닌데 이런 구질구질한 얘기를 쓸 필요는 없다. 말은 씨가된다.


사실 내가 오늘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이런 것보다는 죽음이란 어떤 느낌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어서였다.

죽는다는 것은 아픈것일까?
죽는다는 것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일까?
죽는다는 것은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죽는다는 것은 갑자기 필름이 딱 끊어지는 것일까?

사람은 언제 죽는 것일까.
흔히들 숨이 넘어간다는 표현을 쓴다. 사람은 처음 태어나면 단전으로 숨을 쉬는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그 숨이 점점 올라오면서 얕은 숨을 쉬게 되다가 그 숨이 목을 타고 넘어오는 순간 죽는다고 한다. 숨을 참아본 경험으로 볼때 이건 아무리 봐도 고통스러울 것 같다.

칼에 찔렸을땐 어떨까. 장기의 손상이 먼저일까 과다출혈이 먼저일까. 내가 이전에 헌혈을 할 때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서서히 몸이 식어가는걸 느끼는데 눈 앞은 새까매지면서 이상하게도 황홀한 느낌이 드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과다출혈은 이 상태를 넘어서 의식이 불명이 되고 바로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어쨌든 상처가 있는 만큼 황홀하게 죽지는 못하겠고 아프면서 죽겠지. 아프면서 황홀해지는건가? 의식이 사라지고나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암세포에 의해 몸이 침식되면 어쨌든 죽는다. 죽긴 죽는데 그 기제는 무엇일까. 왜 암에 걸리면 죽지?
암세포란 사실 뭔 대단한게 아니고 건강한 사람 몸속에도 몇천개씩 있는 세포란다. 근데 그게 스트레스나 나쁜 환경에 있으면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혹의 형태로 변하는데 양성이면 그냥 혹이 되고 악성이면 암이 되는거란다. 암이 되면 착상한 자리로부터 혈관을 뻗쳐서 숙주의 영양을 탈취하고 변이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는데 이게 전이라는 거란다.
그럼 뭐냐? 암 그 자체가 몸을 공격하고 이런 건 아니라는 거다. 암세포가 너무 분열이 빠르고 숙주의 영양분도 막 빨아먹으면서 면역세포까지 잡아먹긴 하지만 그 자체가 숙주를 공격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실제로 암환자는 암 그 자체가 아니라 영양실조 &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죽는댄다.

항암제는 약이라 이름만 붙었을 뿐이지 약이 아니라 독이랜다. 그것도 엄청난 맹독. 몸에다 맹독을 투입해 암세포를 죽이자는 거랜다. 중요한건 암세포는 죽지만 그보다 분열이 빠르지 않은 멀쩡한 세포는 더 많이 죽어나가기 때문에 머리빠지고 토하고 손발이 썩어들어가는거랜다. TV에서 보는 암환자가 가지는 모든 처절한 부작용은 '암'때문이 아니라 '항암제'(라고 쓰고 독이라고 읽는다)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주사제가 멈춰서 정말 고마울 따름이었다. 더 이상 그 강력한 독을 몸 속에 집어넣지 않아도 되게 되었으니. 근데 약을 먹이래서 또 고민이다. 우리는 엄마를 살리고 싶은걸까 죽이고 싶은걸까?


하여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다. 좋다. 그렇게 해서 몸이 암에 침식되고 손쓸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고 하자. 좀 있으면 죽는다고 하자.
그럼 그때 피가 멈춰서 죽을까? 아닐것같다.
숨이 멈춰서 죽을까? 숨이 멈추는 기제는 무엇인가? 기관이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될때? 암이 달라붙어 있으면 기관이 일을 못하나? 그렇지는 않다. 암이 있어도 기관은 움직인다. 먹을거 잘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암이 석화되서 죽어 나자빠지기도 한다. 그걸 완치라고 한다.

죽는사람은 서서히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숨이 멎으면서 죽는다. 어쩄든 기관이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화가 아닌데 기관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것은 연료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영양이 있어야 그걸 먹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고 그 세포들이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암으로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연료를 암이 다 빨아먹기 때문인가?

투병일기를 읽어봐도 완치된 사람은 암을 칼로 잘라내려는 노력을 하는게 아니라 요양원같은 물맑고 공기좋은데 가서 먹는 걸 잘먹고 운동 잘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즐겁게 대화하면서 암하고 같이 잘 지내다 보니 사라졌다는 내용 밖에 없다. 병원에서 9차 10차 항암제 투여받고 방사선 치료한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다 죽었다. 몸 속에 독을 넣어서 멀쩡한 세포를 다 죽였으니 실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포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내 기관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죽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난 아직 죽는다는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PS. 암에 대한 내 생각을 보고 내가 가지는 권위가 없기때문에 내 글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아래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암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 - 28년 암 치료 현장에서 써내려간 희망의 편지  최일봉 지음
암에 대해 자연스러운 문체로 써내려 간 '희망의 에세이'로 구성한 책. 의학 전문 용어를 가능한 풀어쓰고 우리 삶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통해 암의 실체에 접근했으며, 지은이의 경험에서 묻어나는 생생한 증언과 거침없는 입담을 통해 누구라도 한 번 책을 잡으면 끝까지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엮었다.
2008/09/09 02:02 2008/09/09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