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304185109893&p=imtv
그래서 사람들이 이종걸의원이 누구지 하고 찾아봤더니 우당 이회영선생이라는 독립투사분의 자손이었던걸로 밝혀져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됐고 현재 인기 급상승중으로 후원카페까지 생겼을 정도다.(후원카페 URL : http://cafe.daum.net/leejkfan01)
우당 이회영선생은 어떤 분이신가?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506107&hisBbsId=K150&pageIndex=2&sortKey=agreeCount&limitDate=-30&lastLimitDate=${lastLimitDate
재미있는것은 몇달전에 있었던 유인촌의 씨발 찍지마 사건(아래 동영상 참조)이 이종걸의원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자료화상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씨발이 아니라 씨.. 라고 했고 씨는 욕이 아니다라고 햇소리를 지껄이는 정신분열증 초기증세를 보이다가(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31342) 결국 욕은 안했지만 어쨌든 사과는 하겠다는 세라정신병동 VIP실에 감금되어야 할 행위를 자행하게 된다.(좀 더 자세한 내용은 오마이뉴스 기사를 참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01150)
세라정신병동 VIP실 환자...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 http://www.mcst.go.kr/web/notifyCourt/press/mctPressView.jsp)
알고보니 유인촌이라는 사람이 원래 욕이 좀 생각없이 나오는 사람 같기도 한 듯하다.
(고재열의 독설닷컴 - 내가 유인촌 장관에게 들었던 욕설 : http://poisontongue.sisain.co.kr/335)
그리고 한나라당은 "이 의원의 발언은 의회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뿌리를 뒤흔드는 헌법파괴적인 발언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이종걸의원을 윤리위원회에 고소한다.
(뉴시스 기사 : http://media.daum.net/politics/all/view.html?cateid=1002&newsid=20081027152816098&p=newsis)
내 생각엔 국감장에서 18... 한게 더 고소받아야 할 거 같은데...
2008년 11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만수도 까셨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08110717004183207&newssetid=1352
잡설이 길어졌는데 이종걸의원의 약력을 보자.
생애
[편집] 어린시절
- 1957년 5월 22일에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4]의 손자로 태어나 안양 만안지역에서 자랐다. 중학과정으로 예원학교 피아노과를 졸업[5]했으나 진로를 변경하여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유신체제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이 때부터 '귀있는 자 들어라'라는 유인물을 뿌리는 일에 가담하는 등 정의를 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편집] 청년기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진학 이후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종로 경찰서 형사의 주요 시찰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학변자로 입대하여 육군 병장 만기제대를 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편집] 사회활동 및 입법활동
[편집] 인권변호사
- 변호사 운동을 준비하여 연수원을 마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6]에 서 인권변호사로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이와함께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 등의 활동을 하면서 국가적, 대국가적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또 대표적인 인권운동가 박원순변호사와 함께 '참여연대' 설립에 기초를 마련하였다.
[편집] 변론인
- 매일경제신문사 부설 '머니라인'의 운영위원으로 금융의 흐름에 대한 법률자문을 하고 있으며, 현대, 대우, 삼성 등의 기업실무에 대한 법률자문을 하였다. 노동분야에서는 건설회사와 전자통신 분야 노동조합의 법률자문을 역임하여 노동법률문제에 에 도움을 주어 해고무효확인소송, 임금소송 등 노동관계 소송을 수행하였다. 또한 7년 이상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소비자법 소비자 인권에 관한 자문변호사로 활동하였다.
[편집] 여성운동
- 여성의 권리신장에 많은 역할을 하여, 1999년 여성신문사 선정 '여성인권에 가장 기여한 남성 10인'에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을 담당하여 승소하였다.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의 초안을 마련하고 입법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여성인권 디딤돌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여성신문사 선정 '양성평등 남성리더 100인'[7]에 선정되었다.
[편집] 정치활동
- 현재 안양시 만안구 국회의원으로 3선(16-18대)으로 있다. 그의 안양 시민으로서의 활동은 김영삼 대통령 정부 당시 노동악법 및 개악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시도할 때 안양에서 서명운동을 주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와함께 안양의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인' 안양지역시민연대'에서 공동대표를 맡았었다. 그리고 변호사활동을 통해 배운 소비자의 인권, 소상공인과 노동자 농민의 권리, 여성 청소년인권보장을 위해 일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임기의 대부분을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IPTV, DMB 등 새로운 정보통신서비스의 정책적 지원, 기간 통신의 국적성 보장, 스팸메일 규제 정책, 전자상거래와 소비자 보호, 공인인증서의 보급, 정보통신요금의 합리적 재조정 등에 역점을 두고, 성과를 올렸다.[8][9] 또한 그는 대한농구협회회장이면서 세계농구협회 아시아연맹 부회장으로 08년 7월독도에 농구대를 기증[10]하기도 했다. 독립기념관 이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이사, 역사문제연구소 감사 등으로 현재 활동하고 있다. 정치부 기자가 선정한 '백봉신사상'[11], 정보통신부장관 공로패[12] 등을 수상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C%A2%85%EA%B1%B8
좀 더 자세한 의정활동이나 방송인터뷰 등의 자료는 이종걸의원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이종걸의원 홈페이지 : http://www.ljk.co.kr/
이종걸의원의 가문은 아래 책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살아 있는 전설 이라는 항목으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이 책의 필자는 한국은 우당 이회영선생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하여튼 이렇게 속시원하게 한나라당을 도발하시는 이종걸의원을 왜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느냐 하면 사실 이종걸의원이 내가 투표하는 안양시 만안구 소속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총선때 나는 이종걸의원에 투표했고 가족도 압박해 이의원을 뽑도록 강제(?) 했는데 그렇게 뽑아준 이의원이 이렇게 신나게 한나라당을 까 주시니 아주그냥 흥이나서 포스팅을 안하고는 못배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고라에서 글도 쓰신다.
http://agora.media.daum.net/profile/list?key=Z8fEBuxmEa10&group_id=1
이종걸의원 후원에 대해서는 아래 이미지를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