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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 문득 휴대폰 속의 '통화기록' 메뉴를 꾹 하고 눌러본다.

"총 통화시간
168시간 22분 09초"

내가 휴대폰을 구입한지 벌써 일년하고도 4개월여 되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의 그 깨끗했던 몰골과 데이터베이스가 지금은 잃어버려도 다시 그 자리에 가면 그냥 있을것같은 고물적 몰골과 백여개가 넘는 전화번호들과 지인들에게서 온 문자메시지, 심심할 때 가끔 했던 게임들의 하이스코어 같은 것들로 빼곡이 채워져있다.

휴대폰이란 뭘까... 携. 帶. 들고다닐 수 있는 전화기?

나는 휴대폰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의 연결이 가능한 도구라 정의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용무를 가진 개인과 개인간의 direct한 연결을 실현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기존 집전화를 생각해보면 일단 전화를 걸었을 때 의도한 상대방이 받을 지 알 수 없고 아예 상대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파악이 불가능하다. 내가 휴대폰에 있어 칭찬하고 싶은 점은 이런 특정상대의 연락용 스테이션(그 전화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범위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 싶다)에서의 부재여부와 통화가능 여부의 한계점을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대인의 행동특성에 비추어 볼 때 획기적인 장점이 아닐 수 없는데 일단 특정상대와의 통화에서 다른 상대가 나올 가능성의 0점수렴에서 오는 거부감의 해소와 명확하지 못한 불특정 '영역'. 즉 스테이션으로의 연계가 아닌 '점'으로의 연계에서 오는 직접접속성공률의 비약적 향상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용무를 가진 사람끼리만의 serially한 접속성공률의 대폭상승을 구현하게 하는 그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휴대성만을 따지고 싶다면 주파수대역을 무한으로 높인 무선전화를 예로 들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휴대폰의 첫 번째 장점은 그런 것이다. 마킹으로 인한 단일 개인의 스테이션화.

휴대폰에는 Short Message Service, SMS라고 해서 우리말로는 단문전송서비스라는 기능이 있다. 이것은 약 80byte의 짧은 메시지를 특정인에게 보내는 기능인데, 이것이 내가 휴대폰의 두 번째 획기적 장점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자질구레한 면에서 생각해보면 10초에 30원하는 통화료보다 40글자를 전송하는데 드는 30원의 가치가 더 높다. 는 면도 있긴 한데... 일단 SMS는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통화의 경우 순간적인 센스와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에 충실하기가 힘들고 필요외 요소인 침묵상태까지 요금정산에 포함되는 반면 SMS는 수신메시지에 대한 순간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형식이 아니기에 '충분히 생각해서 답변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수정할 수 있다' 게다가 침묵상태가 요금정산에 포함되지 않는다.(이것은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SMS의 또 한가지 장점은 '틀'을 가진다는 것이다. 틀이라고 하면 한계, 획일성 등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 틀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무한정 하게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의의를 두고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일단 SMS의 틀이라고 하면 80byte의 제한된 용량과 지정된 '문자'의 사용, 그리고 줄 간격 정도로 규정 할 수 있겠는데, 제한된 용량은 생각을 압축하여야하는 동기가 되고 이는 생각의 재구성을 요구하며 결국 '두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아니라고? 재고찰이라는 것은 반드시 거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 것은 아닐까'를 두 글자로 줄이기 위한 노력마저도 재고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자의 사용은 발성의 보충을 가져온다. +가 있으면 -도 있는 법이지만 +만 생각해보자. 말로는 하기 힘든 대사가 있다. 문자로 바꾸면 보다 수월한 process가 가능하다. 어째서일까. 각자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중의 멋진 특징으로는 이모티콘이 있을 수 있다. 발성의 억양이 문자의 이모티콘으로 전환된 것이라는 판단도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을 씀으로 인해 풍성해지는 문자속 감성의 정도는 가히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라 생각한다. 실질적 대화상에서 ♡라든지 ♪를 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줄 간격은 그 여백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음 내용으로의 전환 사이에 자리잡은 하얀 여백의 뒤에 나타나는 것은 내용의 연속일 수도 있지만 어이없는 반전일 수도 있다. 상상의 가능성을 부풀려준다고 할 수 있다.
또 SMS는 시간의 공간적 이용을 가능케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에 대해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feedback을 요구한다. 통화의 경우,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찾아줄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경우보다 우선 전화를 끊고 책을 찾아 다시 연락을 해 주는 형식을 취할 텐데 이 상황에서 통화가 끊긴 순간 접속시간의 단위가 한번 끊긴 것이고 이것은 일단 시간이라는 공간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는 [연락-책찾기-피드백]이라는 하나의 Track이 각 통화라는 수 개의 Session으로 분할되어 운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SMS를 이용한다면 [연락-책찾기-피드백]이 한 세션 내에서 문자가 오고가 opening에서 closing이 완전히 이루어지는데 결국 세션이 트랙의 크기에 맞게 유동적으로 늘었다 줄었다하는 공간적 활용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휴대폰을 내가 어렵게 대하는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의무'이다.
기본적으로 스테이션에서의 개인은 전화가 연결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지만(왜냐하면 상대방은 '결과적으로' 그 '영역'에 접속을 시도한 것이지 자신이 원하는 개인에 접속을 시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라는 자신에의 직접접속수단을 가지게 된 지금에 와서는 상대방의 연락을 받지 않을 경우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는 행위는 '언제 어디서고 너의 접속요청에 응하겠다' 라는 의무감을 동반하는데 나는 이 의무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는 만큼 의무는 가중되고 그 만큼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비난받게 될 소지(=확률)도 높아간다.
간단히 말해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만큼 전화를 못 받게 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약속이라는 것은 상당히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연락을 받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확률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무얼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잡상이라는 것은 어디로 빠질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구질구질하다. 몇 군데 논리의 오류가 보이는 것이 불쾌하다. 잡상이라는 이유로 넘어가보자.
2006/01/08 19:34 2006/01/08 19:34

나랑은 생각이 다르네..내가 생각하는 휴대폰은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것..그리고 내가 번호를 알려준다는 것은 내가 직접 대화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어디까지나 통화의 연결 여부는 내가 지니고 있다는게 휴대폰에 대한 나의 생각..

myst

귀국은 언제하냐? 벌써 했나? 새로운 캠페인 뛰려고 하는데 인재 부족이야. 연락바람 --

클리아르

귀국은 7월이야~